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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우 Apr 23. 2022

일상툰과 사소설과 VLOG

그 유행의 역사에 관하여

간략하게 용어 정리를 하자면 일상툰은, 자신의 일상 가벼운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 VLOG는 자신의 일상을 영상의 형태로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 사소설은 일본 근대문학의 사조 중 하나로 자신이 겪은 주변의 가벼운 이야기와 사유 위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발생시기가 일제강점기이기도 했기에 한국 문학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8)이 이에 해당한다. 얼핏 들으면 멀어보이지만 세가지 작품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기반으로, 수필과는 조금 다르게 약간의 소설 혹은 만화적 기믹을 더하여 사람들에게 내보인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사소설의 발생과 발전에는 급격한 일본의 근대화가 있다.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는 1903년 만국 박람회를 개최할 만큼 빠르게 성장한 것과 달리 국민들 개개인의 성장 속도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사소설의 발생과 유행의 배경은 여기에 있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 그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공감을 얻기를 원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국내에서는 사소설 보다는 자전적 소설 혹은 오토픽션이라는 형태로 이와 같은 소설형태가 발달되어 왔으며, 일제강점기에 두드러졌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 자전적 소설이 특히 유행했던 시기가 80년대 부터 90년대, 박완서의 등장과 신경숙의 유행이 아닐까 싶다. 특히 신경숙의 경우 본인과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 말라는 말 까지 소설로 쓴 것으로 유명할 정도로 일상의 이야기를 소설로 많이 끌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상툰은 본격적으로 웹툰 시장이 지금처럼 커지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거대한 세계관이나 서사가 필요치 않는데다 소재가 가까운 곳에서 나타난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네이버 웹툰의 시작지점이라 할 수 있는 <골방환상곡>(2005) <낢이 사는 이야기>(2006)등이 해당되었으며, 이후에도 <스쿨홀릭>(2008), <역전! 야매요리>(2011), <대학일기>(2016), <대학원 탈출일지>(2022)까지 웹툰 시장의 한 획으로 끊임 없이 생산되고 인기를 끌어오고 있다.


브이로그는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싸이월드, 네이버블로그와 같이 본인의 일상과 사진을 블로그 형태로 저장하던 것과 달리 유튜브 및 여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발달로 일상을 동영상 형태로 저장하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으며, 인스타그램의 인스타 스토리나 틱톡과 같은 숏플랫폼이 등장하며 이러한 기조는 더욱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일상툰과 블로그, 브이로그의 발생 및 유행시점은 한국사회의 격동기에 해당한다. 경제적으로만 하더라도 2001년 1인당 GDP가 11000달러 수준에서 2021년 34000달러까지 20년 간 3배 가량 뛰었고, 각종 사상과 이념의 유행이 시시때때로 바뀌어왔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불과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때만 하더라도 방송 3사 모두에서 방영하고 가게들이 문을 닫는, 실상 왕의 죽음에 준하는 대우를 했으나 지금에 와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그 정도로 과한 대우를 하는데 동의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급격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 속에서 개인의 삶이 동일 한 속도로 발전했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의 유행 시기가 100여년 전 일본의 사소설 발생 사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또 주목할 만한 점은 현재 앞서 말한 세 가지 장르의 작품들의 주 생산자가 여성이라는데에 있다. 이는 해당 장르들의 근간이 공감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상을 올리고, 공감 받거나 본인과 비슷한 삶의 방식에 공감을 하는 일련의 행동이 여성 독자 및 생산자들에게 보다 인기 있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자전적 소설의 경우 신경숙과 박완서의 경우가 그러했고, <마음의 소리>나 <스쿨 홀릭>, <레바툰>과 같이 2000년대 및 2010년대 초기에는 남성 작가의 일상툰 역시 존재 했으나, 2010년대 중반에 들어 <모죠의 일지>, <대학일기>와 같은 만화들이 네이버 간판만화로 급부상하면서 일상툰의 생산 및 소비자는 여성, 특히 20대 여성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Vlog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편이다.


이는 이러한 장르들이 여성을 말하기와 관련있기 때문이다. 박완서가 등단하던 80년대만 하더라도 오정희과 박완서 정도를 제외하면 여성작가는 귀했고, 그렇기에 '여류작가'와 같은 여성 작가를 특정하는 단어를 별개로 사용했을 정도였다. 이런 남성 위주의 작품들 속에서 여성, 그것도 결혼 한 이후 거의 조명 받지 못했던 어머니가 아닌 한 명의 여성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문학작품의 등장은 신선한 반향이었고, 더 나아가 여성문학과 여성연대를 이끌어내어 1세대 페미니즘의 물결을 일으켰다.


여성작가 위주의 일상툰 및 브이로그에도 비슷한 경향성이 있다. 이전에 비해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작품으로 남기는 것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잘 꾸며진 여성 보다 털털하고 현실적인 여성의 삶, 혹은 살면서 겪었던 불편과 불안등을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들이 여성을 말한다고 말 할 수 있다. 뿐 만 아니라 컷툰과 같이 한 사람이 다수의 댓글을 달 여지가 있는 만화의 형태를 취하면서 독자들이 공감하고 함께 이야기 할 장을 만든다는 점에서 2010년대 중반 부터 유행하는 페미니즘 물결과 이들을 연결지어 생각 해 볼 여지가 있다.


이러한 경향은 근래에 와 여성 뿐 아니라 성소수자 집단에서도 나타난다. 가장 근래에 오토픽션이라는 단어를 유행시켰던 김봉곤 작가의 경우 본인이 게이임을 밝혔고, 50만 구독자를 달성한 유튜버 풍자 테레비의 풍자 역시 트렌스젠더이다. 코로나로 퀴어 페스티벌과 같은 집단 행동을 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경향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나 관련 운동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상툰이나 사소설, Vlog등은 아마 계속해서 유행할 것이다. 셀럽의 삶은 셀럽이기에 눈길을 끌 것이고, 일반인의 삶은 일반인이기에 비슷한 처지의 혹은 전혀 반대되는 삶을 사는 누군가에게 흥미롭게 보여질 것이다. 물론 그래왔기에 이 장르들은 현재 레드오션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과포화 상태로 주춤해 보일지라도. 형태나 표현 방식이 바뀌어 언젠가 또 다시 붐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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