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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혜경 Oct 02. 2023

꽃노을 타고 오시려나(2023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2023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부문 선정작


어머니 기일이다. 유난히 은행잎이 고와 보이던 길을 따라 울면서 보내드린 지 어느새 십 년이 흘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잊고 지내다가도 기일이 다가오면 웃어 주시던 모습을 떠올린다. 나물까지 준비해 놓고 습관처럼 창밖을 내다본다. 코로나로 인해 올 사람도 없고, 온다고 해도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올 테니 보이지도 않건만, 누가 온다고 하면 창밖을 보면서 기다리던 어머니 모습을 나도 닮아 간다.

  노을이 유난히 곱다. 생전에 좋아하시던 홍시 빛깔로 물든 하늘에 상현달이 떴다. 누가 저리 오묘하게 아름다운 노을을 만들었을까. 우리 어머니가 예쁘게 단장하고 꽃노을 타고 저기쯤 오시려나. 생전처럼 친구들에게 ‘우리 며느리가 밥 차려 놨으니 같이 가자.’라며 함께 오시면 반갑겠다.

  어머니는 92세 생일을 보내고 한 달 뒤 한겨울도 한여름도 아닌 가을에 떠나셨다. 마지막 한 달간은 무척 힘이 들었다. 몇 년을 누워서 지내면서도 욕창이 생기지 않았는데, 하도 설사를 하는 바람에 아무리 잘 관리해도 꼬리뼈에 생긴 상처가 낫질 않아서 겁이 났다. 주사기에 담은 미음과 영양 보조 식품을 입에 넣으면 뱉어 내서 흘리는 게 반인데도 잘 버티시더니, 더운 날씨에 제사 모시느라 내가 고생할까 봐 한 달을 기다렸다가 떠나신 듯했다.

  남편이 네 살 때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 기일은 음력 동짓달이다. 제수를 준비하려면 추운 날씨에 며느리가 애쓴다고, “나야 남편이니 괜찮다만, 니가 수고가 많다. 나는 좋은 계절에 가야 너를 고생시키지 않을 텐데.”라고 하셨다. 음력 팔월 어머니 생신날엔 삼십 명이 넘는 친구들을 모셔서 아침을 대접했다. 더운 날씨에 미리 음식을 해 놓을 수 없어서, 잠을 자지 않고 생일상 차리는 나에게 해마다 미안하다고 내 손을 다독이곤 하셨다.


  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 결혼 날짜가 정해지자 일 년에 여덟 번 모시던 제사를 모아서 시월 초하루에 지내도록 해 주셨다. 제기도 목기(木器) 관리하려면 힘들까 봐 설거지하기 쉬운 스테인리스로 장만했다고 하셨다. "제기를 닦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냐? 놋그릇 닦으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단다.” 하지만 그때는 철이 없어서 당연한 걸로 알았지, 그게 사랑이라는 걸 몰랐다.

  꼬박 스무 해를 아이도 키워 주고 살림도 도와주시다가 팔순에 노인성 치매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내가 혼자 살림을 도맡으면서 시시때때로 콩나물을 다듬어 주고 빨래를 개켜 주시던 손길이 아쉬웠다. 얼마 전 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울 할머니는 참 행복하신 분이야. 지금도 이렇게 그리워하는 며느리가 있어서.”라고 울먹였다. 딸은 자세하게 모른다. 20년은 애증의 감정으로 갈등했고, 아기가 된 어머니를 돌보면서 12년간 마음 자락을 다독이고 화해하면서 사랑과 그리움으로 남았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의료 사고로 여러 번 수술했을 때 남편과 시누님은 나을 때까지 요양 병원으로 모시자고 했다. 그날 그 말을 직접 들은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느끼셨던지 기저귀도 갈지 못하게 허리춤을 움켜잡고 돌보던 내 딸을 노려보셨다 한다. 딸은 나중에 그 상황을 전해 듣고 할머니 맘을 상하게 하면 안 되겠다고 힘들어도 자기가 돌보겠다고 했다.

  내가 소변 줄을 차고 퇴원하자 “어디 갔었드노.” 하고 반기면서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어디가 아프노?” 수술한 자리를 보여 드리자 그 거친 손으로 상처를 쓰다듬으려다가 “엄니! 나 아파요.” 하면 황급히 손을 뺐다. 틈만 나면 어디가 아프냐고 걱정해 주는 걸 보면서 아기 같은 어머니를 시설에 맡길 자신이 없었다. 힘이 들어도 집에서 모시기로 했다.


  딸과 아들은 할머니가 정성을 다해서 키워 주셨다고 기일이 되면 두툼한 봉투를 내놓는다. 딸은 어렸을 때 약속했다면서 해마다 할머니가 맛있게 드시던 홍시를 별도로 준비하고 부침개도 도맡아서 해 줬으니 그 효도를 내가 받는 셈이다.

  음식은 가짓수는 간단하게 장만했지만, 정성껏 상을 차렸다. 떡도 나물도 과일도 푸짐하게 올렸다. 특히 딸이 사 온 홍시는 여러 층으로 괴어서 올렸다. 떠나시기 전 몇 년간 죽을 드셨으니 오늘은 밥도 탕국도 생선도 나물도 양껏 드시라고 했다. 같이 오신 친구 분들도 맛있게 드시라고 나물과 과일을 챙겨서 밖에 내놓았다.

  생전에 늘 축원하셨듯이 장남 여기저기 안 좋은 것도 다 거둬 가 주시고 자손들 밥벌이도 잘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게 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년엔 모두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십사하고 나는 생떼라도 쓰듯 간절하게 기원했다.      

  어머니가 어디쯤 가셨을까. 잘 가고 계실까 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파트 상가는 불빛으로 대낮 같은데 저녁에 본 꽃노을 자리에는 어둠이 내렸다. 내 마음이 허전한 걸 보니 다녀가신 게 분명하다.       


<꽃노을 타고 오시려나>는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부문 선정작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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