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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혜경 Aug 06. 2023

하늘로 보내는 편지

    


사돈 어르신께서 돌아가셨다. 우리 어머니와 사돈이 되기 전부터 친구 사이였던 두 분이 하늘에서 반갑게 해후하셨을까, 마음이 아프면서 한편으론 잔잔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사돈 어르신은 시안(時安)이라는 곳의 가족 봉안묘에 모셨다. 시간마저 잠드는 곳이란 그곳에서 ‘하늘로 닿는 길’이라고 쓰인 우체통을 보았다. 그 빨간 우체통을 보면서 문득 우리 어머니께 편지를 쓰면 받으실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께 딱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던 일이 있었다. 무슨 일인지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어머니께 야단을 많이 맞았고 나는 그게 몹시 억울했다. 말로 하자면 눈물부터 솟으니 말을 할 수도 없고 가만히 있기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어머니께 편지를 장문의 편지를 썼다. 편지를 드리고 시장엘 다녀오니 어머니는 화가 나 있었다.     

"니 편지는 잘 읽었다. 그런데 입 놔두고 뭔 편지고? 어른한테... 앞으로는 말로 해라."     

말로 할 수 없어서 편지를 드린 것인데 오히려 야단을 맞고 나니 눈물이 솟았다. 그리고 야속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는 어머니께 편지를 쓰지 않았다. 나중에 어머니가 편찮으시면서 그동안 서운했던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나니 그때 어머니가 화를 냈던 이유를 비로소 나도 깨닫게 되었다.     

친정아버님이 어려서 돌아가시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바람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우리 어머니, 불경을 읽으려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고 했다. 아기를 업고 재우면서, 빨래를 풀해서 밟으면서, 다듬이질하면서 벽에 천장에 써 붙인 불경을 외웠다고 하시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그런 어머니였으니 내가 깨알같이 구구절절 길게 쓴 글을 읽으시려면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내가 쓴 글을 신경을 써서 읽으려니 화가 무럭무럭 솟구쳤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글을 잘 모르니 편지를 써서 나를 골탕 먹이려나 보다 싶기도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수필로 등단하고 해마다 동인들과 작품집을 낼 때마다 어머니는 가장 훌륭한 애독자가 되어 주셨다. 돋보기를 쓰고 내가 쓴 글을 손녀에게 찾아달라고 해서 크게 소리 내어 읽으시는 어머님을 뵈면서 나는 괜히 부끄러웠다.     

어머님이 나중에 많이 편찮으셔서 말을 잊고 글을 읽지 못하게 되어서도 책이 나왔다고 보여 드리면 책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좋아하시다가 가슴에 품고 잠이 드시기도 했다. 그 모습을 뵈면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쓸 수 있어야 하련만 싶었다.     

다시 어머니께 편지를 쓴다면 아주 큰 글씨로 어머니가 알아보시기 쉽게 쓸 것이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다고, 어머님이 너도 늙어보라 하시더니 돋보기를 쓰고 눈을 찡그리면서야 어머니 마음을 알게 되었노라고, 어머니의 며느리여서 감사했다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편지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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