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니를 닦았다. 접착제로 범벅이 된 것을 닦으면서 매번 남편이 이렇게 했겠구나. 깔끔한 성격에 마누라에게도 이런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 한사코 빼 주질 않았구나. 자기 대변 냄새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화장실에 가겠다고 기를 썼구나. 이젠 그 냄새는 물론이고 기저귀까지 낯선 간호사 손에 맡기게 되었으니. 그 깔끔한 성격에 어찌 견디려나,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이 요독 증상으로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이틀째 몇 군데 병원에 전화를 해 봐도 응급 투석할 수 있는 병상이 없단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서 그날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갔다. 남편은 첫날 응급으로 받은 첫 투석 후유증으로 횡설수설했다. 정식 투석을 위해 카테터 시술을 하고 오더니 더 이상해졌다. 얼굴과 몸이 많이 부어올라서 침대가 좁을 정도로 답답해 보였다.
산소를 넣어 줘도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자 인공 호흡관을 삽입해야 한다면서 갑자기 의료진들이 우르르 모여들더니 바삐 움직였다. 인공 호흡관을 넣자 세차게 고갯짓을 하던 그는 계속 잤다. 잠자는 약을 썼다고 하지만, 정신없이 잠을 자는 남편을 보니 혹시 이게 마지막은 아닌가 싶어 와락 두려움이 몰려왔다. 갑자기 저 지경이 되다니. 내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안간힘을 썼지만, 자꾸 나쁜 생각이 들어서 아득해지곤 했다. 일반 투석은 할 수 없고 중환자실에서 천천히 24시간 투석을 하기 위해 응급 중환자실에 자리를 마련한다고 했다.
남편이 중환자실로 가고 나면 나는 병원에 있을 수 없는 데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아들네 집은 병원에서 멀어서 가까운 동생네로 갔다. 동생이 따끈한 게 좋을 것 같아서 끓였다는 떡국을 맛도 모르고 먹었다. 집을 떠나서 이틀을 어떻게 보냈는지 몰랐는데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자리에 누웠다. 동생이 미리 켜 놓은 온돌 침대는 따뜻해서 무엇보다 밤새 앉아 있느라 아팠던 허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밖에선 동생이 내 생일 미역국을 끓인다고 달그락거리는데, 나는 침대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다. 혼자가 되자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그가 안쓰러워서 울다가, 아니지 내가 울면 진짜로 나쁜 일이 생길까 봐 눈물을 닦았다. 남편이 정신없이 자던 모습이 떠오르면 다시 눈물이 나왔다.
간밤에 응급실에서 남편은 화장실에 가겠다며 밤새 나를 졸랐다. 주렁주렁 달린 것들 때문에 갈 수 없는 상황인데도 고집을 부렸다. 기저귀에 볼일을 보라고 해도 환자들도 인권이 있는데 어떻게 냄새를 맡게 하느냐며 부득부득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다. 보조 침대도 없는 응급실 의자에 앉아서 대거리를 하려니, 나는 하룻밤 새 몸도 마음도 지쳤다. 나중엔 저기 사람들이 있다든지, 여기가 일본이냐고 묻는 등 자꾸만 헛소리하는 게 헛것이 보이는 듯했다. 간호사는 그건 처음 투석하는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섬망 증상’이라며 잘 지켜보라고 했다.
아침이 되자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내게 엊저녁은 먹었느냐고 물었다. 생일인데 나 때문에 고생하니까 자기 카드로 맛있는 것 사서 먹으라고 했다. “내 생일은 내일인데?” 했더니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고 모레도 먹으라고 하기에 이제 그전 당신으로 돌아왔다며 나도 웃었다.
몇 년 전 내가 의료 사고로 여러 번 수술을 받았을 때 마지막 수술하던 날이 남편의 생일이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나는 자꾸만 자려고 했고 잠을 재우면 안 된다고 해서 깨우면 무섭게 화를 내더라고 했다. 나는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다. 생일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밤새 나를 깨우면서 화를 받아 줬던 남편을 떠올리자 새삼 미안했다. 그래도 그렇지, 내 생일을 앞두고 이렇게 앙갚음하다니 “그러지 마. 당신.”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까무룩 정신없이 4시간을 잤다. 남편을 중환자실에 보내 놓고 염치도 없이 이렇게 잠이 오다니. 깨어서야 그가 잘 있는지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신장에 대한 것은 가장 잘 본다는 병원이니 낫게 해 줄 거라 믿기로 했다. 동생 내외가 깰까 봐 더 누워 있으려 했지만, 더는 잠이 오지 않았다.
병원에서 가져온 짐을 정리하는데 남편의 틀니가 떠올랐다. 병원 간호사가 전해 주는 비닐에 담긴 틀니를 보는데 가슴이 울컥했다. 답답할 것 같아서 내가 “마스크를 썼으니 빼도 괜찮다.”라며 달라고 하는데도 한사코 빼 주지 않더니. 보이지 않았다. 경황이 없는 중에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는데 다 뒤져도 안 보이니 앞이 캄캄해졌다. 다행스럽게 다른 가방에 있었다. 와중에도 잃어버릴 것 같아서 잘 넣는다고 그랬을 텐데 그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한밤중이라서 물소리를 줄이고 틀니를 닦았다. 워낙 잇몸이 부실해서 임플란트를 할 수 없어서 틀니를 이용하는데, 그동안 내가 한 번도 닦아 본 적이 없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오래 걸려서 뭐 하느냐고 채근을 했는데 날마다 이걸 닦으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지. 나는 그런 기분까지 알려고도 안 하고 옆에서 무엇이든 마구 먹고 가끔은 타박도 했으니 참으로 눈치도 없었다. 이제야 그의 노고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어서 나아서 다시 사용하라고 잘 이겨 내라고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동안 깊은 잠 제대로 자지 못했던 것 실컷 자고, 우리 곁으로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바람을 담아 정성껏 틀니를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