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단술을 주고난 뒤 냉장고에 넣으려다가 병을 헛드는 바람에 단술을 모두 쏟고 말았다. 추석을 쇠느라 며칠간 강행군한 탓으로 좀 피곤했나 보다. 푹 쉬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니 손이 좀 부었는지 잘 쥐어지지 않더니, 그만 병을 놓치고 말았다. 커다란 병 속에 들었던 단술이 확 쏟아지면서 마치 개울물처럼 흘렀다.
급한 대로 걸레와 수건으로 막아놓은 뒤에 닦기 시작했다. 밥풀도 잔뜩 있는 데다 설탕이 들어간 끈끈한 물이라 그런지, 걸레를 빨면서 닦아도 닦아도 끈끈했다. 그걸 닦고 있는데 자꾸만 화가 났다. 왜 화가 날까. 쏟아버린 단술이 아까워서, 쏟은 단술을 닦는 것이 힘들어서, 아니면 실수한 게 속이 상해서였을까? 자꾸 힘이 빠지는 내 손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이 어지러웠다.
남편은 힘드니 그냥 사서 차례상에 올리자고 하는 걸 내가 우겨서 단술을 만들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이니까 내가 직접 만들어서 올리고 싶어서였다. 냉장고에 넣으려니 마땅한 병이 없어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물병에 넣었다. 물병은 커서 좋았지만, 뚜껑이 쑥쑥 빠지는 단점이 있어서 사용하지 않고 두었던 것인데, 한동안 쓰질 않다 보니 잊고 있었다. 내가 놓쳤더라도 뚜껑이 빠지지 않았으면 덜 쏟아졌을텐데... 살펴보니 물병 전체에 금이 가고 바닥에 부딪힌 부분은 조금 깨지기까지 했다.
진작에 버릴 걸 그랬나 보다. 괜히 아까워서 다른 용도로 써야지 하고 두었던 것인데, 깨졌으니 이젠 정말 너와의 인연이 다 되었구나. 이런 작은 것에도 연연하다니 너도 참 그렇구나. 이게 유리병이었다면 유리 파편까지 치워야 하니 더 일이 많았을 텐데 다행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일에 화를 낸 자신이 우습게 여겨졌다.
치우고 나서 한숨을 돌리는데 친구가 길상사(吉祥寺)에 상사화(꽃무릇)가 피었다며 사진을 보내줬다. 붉게 피어난 꽃무릇이 처절하도록 곱다. 친구와 길상사 꽃무릇을 보러 가자고 해놓고는 보지 못하고 부산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걸 여태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오래전 길상사에 처음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날은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도심 속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나는 구경꾼이 되어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극락전에선 낭랑한 독경 소리가 흘러나오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계신 스님들의 모습이 열린 문으로 보였다. 일주문 앞 안내판에 49재며, 기제사 등이 붙어있더니 재(齋)를 올리는 중인가 보았다.
관음보살상이 다른 곳과는 달랐다.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가 만들어서 봉안했다는 석상으로 종교 간 화합을 담은 관음보살상이라고 하는데 참 단아했다. 참선이나 명상하는 공간이라는 ‘침묵의 집’도 인상 깊었다.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고 했다.
길상사의 본 법당이라는 극락전 앞엔 우리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수령 270년이라는 느티나무를 비롯해 아름다운 나무가 참 많았다. 나무는 긴 세월을 살면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영욕의 역사를 지켜보았으리라. 꽃처럼 귀여운 아기가 아장아장 계단을 올라갔다.
길상사는 원래 고급요정 '대원각'이었다. 김영한(법명 길상화) 님이 대원각을 시주하여 1997년 사찰이 되었다. 노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동하여 친견한 뒤 10년에 걸쳐 사양하는 법정 스님께 거듭 청했다. 당시 시가로 천억이 넘는 7천여 평의 절터와 전각 모두를 보시했다. 사찰 내의 일부 건물은 개보수했으나, 대부분 건물은 대원각 시절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녀는 법정 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만을 받으면서 수천 대중 앞에서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요정 대원각에선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을까. 나 같은 평범한 아낙은 미루어 짐작해보는 것도 벅차다. 요정 대원각의 노랫소리가 길상사의 목탁 소리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면서 죄 많은 여자 김영한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는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는데, 신분과 이념이 애틋한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백석 시인과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니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그녀는 육신의 옷을 벗기 하루 전날 목욕재계하고 절에 와서 참배한 뒤 마지막 밤을 길상사에서 보냈다. “천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라고 말하며 눈을 감았다고 했다. 무소유를 실천하신 법정 스님도 길상사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길상사와 그들, 잠시 들렀다 가는 나와 저기 사람들, 피고 지는 꽃들조차 또 무슨 인연이런가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과 사람만은 아닌 나와의 인과관계도 인연과 연관 지으면 그리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 또 하나의 인연이 나를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