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혜경 Aug 09. 2023

나도 시엄니는 처음이라


      

  엘리베이터에 타는 여자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손에 서류 봉투가 들려있다. 우편함을 여는 걸 봤기에 아마 기쁜 소식이 있는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웃으면서 말을 건다. "우리 아이 입학 통지서가 나왔어요. 다른 애들은 다 나왔는데 우리 애만 안 나왔었거든요."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하는 그녀를 보면서 오래전 나를 보는 듯했다.

  축하한다고, 나도 그랬다고, 첫 아이 입학 통지서 나올 때 참 기분 좋았노라고 하자 정말 그랬느냐며 배시시 웃는 그녀가 예쁘다. 그랬다. 나도 큰애가 유치원 갈 때는 얼마나 좋았던지 첫 번째로 접수하는 극성도 떨었다. 나이가 되면 다 가는 학교를 내 아이만 가는 듯 기뻐했다.


 요즘 나를 누가 자세히 본다면 저 여자 무슨 좋은 일이 있나 할 것 같다. 다른 집 자식들 다하는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애를 태우게 만들던 딸과 아들. 그나마 아들이 장가를 가게 되었는데 어찌 아니 좋을까. 며느리, 새 식구가 생긴다니 정말 설렌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해서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매번 손님 같을 것이다.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우리 집이 달라 갈등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괜찮은 시어머니가 되고 싶은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들의 결혼 날짜가 잡힌 후 평소엔 관심도 두지 않았던 사이트에 들어가서 며느리들의 마음을 읽어본다. 별별 이야기가 올라와 있다. 물론 속상한 일을 올려서겠지만 내가 볼 땐 별일 아니게 보이는 이야기에도 많은 이가 분노하는 댓글을 달아놓은 걸 볼 수 있었다. 시어머니  입장에서 읽어보면 서운한 생각이 들 만큼 지나쳐 보이기도 한다. 물론 시부모라는 이유로, 고부간에 지나치게 구는 이들도 있지만 정말 세상이 변했구나 싶었다.

  결과적으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하는 것도 관심을 가져도 잘해도 잘못해도 싫고 부담스러우니 각자 살자는 것 같다. 자기가 이룬 가정에 대한 개념이 더 확고해 보인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나 몰라라 하고 살면 남과 다를 게 뭐 있겠는가. 나는 며느릿감에게 너무 잘하려 들면 서로 피곤할 테니 남들보다는 조금만 더 관심을 두자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애기동백이 곱게 핀 것을 보고 예비 며느리에게 꽃 사진을 보내주려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보내는 카톡을 어려워하진 않을까 조심스러워서다. 그러면서 그 아이가 메시지를 보내오면 얼마나 반가운지. 자꾸 주절주절 대화가 길어지다가 ‘아차’ 한다. 자주 아는 체하면 귀찮다 할지 모르겠고 또 나 몰라라 하면 또 관심이 없다며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시엄니는 처음 되다 보니 어떻게 하면 넘치는지, 부족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새해 아침, 떡국을 먹고 났는데 예비 며느리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아침은 드셨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버님 좀 바꿔 달라고 한다. 전화를 받는 남편의 얼굴에 쑥스러움이 섞인 웃음이 번진다. 좋은가보다. “내년엔 저희도 부산에 가서 함께 할게요.” 아! 이제 우리의 안부를 물어 줄 식구가 늘었구나. 새해 첫날 아침을 행복한 웃음으로 시작한다.                

이전 07화 인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