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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혜경 Oct 04. 2023

낮에도 뜨는 별

    

  낮에도 별이 떴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뜬 별은 침울한 기분을 반짝거리게 해줬다. 어둠 속에서 빛나도록 만든 특수 물감을 칠한 종이에 지나지 않는데 놀라운 효과이다. 언젠가 딸이 자신의 방 천장에 야광별을 붙이고 유치원생처럼 ‘예쁘죠?’ 하기에 아이 같다고 놀렸다. 당시에는 무슨 맘으로 붙였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그 방에 누워서 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나처럼 아무 때나 밤하늘을 보기도 하고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위로받고 싶었나 보다.

  복강경으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다. 맹장 떼어내는 것 만큼 쉽다고 하고 나와 같은 수술을 받은 이들도 건강하게 잘 지내기에 동네에서 제일 큰 산부인과에 갔다. 아기집에 생긴 물혹이 커서 제거해야 한다면서 의사는 5%의 부작용을 설명했다. 수술이 잘됐다고 했는데 퇴원하고 며칠 지나서 자고 일어난 요에 물이 흥건했다.

  방광 윗부분을 건드려 소변이 샜다는 것이다. 봉합해야 한다고 해서 이번에는 개복했다. 며칠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어 재수술받았다. 시작은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20일 동안에 세 번이나 전신 마취를 했다. 의사는 자기 실수를 덮으려고 연거푸 집도했고 나는 낫게 해주려니 믿고 무엇에 홀린 듯이 그에게 맡겼다. 

  우여곡절 끝에 퇴원했으나 내 몸은 몹시 지쳤다. 편찮으신 시어머니를 돌볼 체력이 되지 못했다. 할머니를 보살폈던 딸이 나 대신 할머니와 같이 자겠다고 나섰다. 남편의 숙면을 방해할까 봐 딸 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딸은 할머니 돌보느라 힘들었으니 우리 엄마 좀 푹 쉬시라며 커튼으로 창을 가려서 방을 어둡게 만들었다. 천장에는 별들이 반짝였다.

  식구들 앞에서 씩씩한 척했지만, 나는 절망했다. 방광에 소변이 어느 정도 차면 소변이 새서 기저귀를 차야 했다. 혹시 이대로 영영 오줌싸개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서 기저귀를 갈면서 울기도 했다. 그 무렵 딸 방에 야광별은 심신이 지친 나를 위로했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도 자려고 불을 끄면 작은 별들이 빛나면서 잘 이겨내라고 용기를 주었다.

  연이은 수술 때문인지 자려고 눈을 감으면 벽에서 진자줏빛 커튼이 펄럭거리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때로는 우르르 큰 바위부터 자갈까지 쏟아져 내렸고 병실 벽 전체가 화면이 되어 예전에 보았던 만화속의 한 장면 같은 풍경들이 펼쳐졌다. 발목에 쇠사슬이 묶인 채 어슬렁거리면서 지나가는 군상들, 사람이라는 형태는 보이지 않으면서 그들은 물결처럼 흘러갔다. 무엇보다 힘들게 만드는 건 내가 누운 침대 발치 벽에 나타나는 계집애였다. 머리를 양쪽으로 묶고 몽당 치마저고리를 입고 옆에 보퉁이를 끼고 앉은 채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는 흑백만화속의 얼굴이었다.

  회진 왔던 의사에게 그런 증상을 이야기하니 신경안정제와 영양제를 처방해주었다. 작은 영양제 한 병의 효과가 그렇게 큰 줄은 몰랐다. 그 밤부터 내 눈앞을 어지럽히던 형상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신경안정제를 맞고도 깊은 잠은 잘 수 없었다. 두 번 신경 안정제를 맞았는데 두 번 모두 잠에서 깰 때는 길쭉한 물방울이 팍 터지면서 반짝하고 별이 빛났다. 그렇게 깨어나면 머리는 터질 듯이 아팠고 자꾸만 별이 보였다. 그 별을 보면서 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 의지로 잠을 자야겠다고 느꼈다. 이 경험은 회복하는 내내 내 의지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석 달을 기다렸다가 다른 병원에서 수술받았다. 이번엔 한 달이 넘게 입원했다. 몇 번의 전신 마취 때문인지 눈이 피곤해서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병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낮엔 변화무쌍한 구름을 보았고 밤엔 별을 보았다. 서울의 밤하늘을 본 지가 언제인지. 2인실에서 옆에 환자가 퇴원하고 혼자가 되어 하늘을 보고 있으려면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싶었고 가족과 집이 그리웠다. 건강을 과신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에게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디에서 잘못됐는지 봄부터 가을까지 고통에 시달렸다. 

  내가 건강할 때는 남편 마음도 잘 몰랐다. 나 혼자 병실에 있게 되면 불편한 건 딱 질색하는 그가 같이 있어 줬다. 속내를 말로 표현하지 않는 남편은 공기인 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산소라는 걸 알았다고 고백했다. 어느 날은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너무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며 울더라고 딸이 전해줬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가 여러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할머니를 돌보느라 나를 보러 올 수 없었던 딸은 시시때때로 내 상황을 물었다. 학교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은 아들 역시 틈나는 대로 들렀다. 아이 친구들까지 병문안을 와주었다. 군대에 가 있던 조카는 휴가를 나와서 병원에서 지내면서 나를 돌봐줬다. 나 때문에 고통스러웠겠지만, 우환을 계기로 부부와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이버 세상을 통해서 알게 된 이들이 멀리서도 찾아와 주었을 때는 감동했다. 오지 못하는 이들은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걱정하고 염려해주었다. 블로그에도 많은 이가 다녀가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쾌유를 빌어주었다. 처음 보는 이들도 쾌차를 바라는 글을 써놓곤 했으니,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나를 걱정해주는 이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별 속에 문병을 와주고 걱정해주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내 아이들, 친구들, 동기간, 많은 사람을 떠올리면 내가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눈물겨웠다. 그래, 내가 이만큼 회복하기까지는 저렇게 빛나는 사람들 덕분이었구나. 건강했을 때는 몰랐는데 아프고 나서 나를 위해 비춰주는 별들이 많았음을 알았다. 봄부터 가을이 오기까지 고생하는 내내 참기 힘들 때마다 포기하고 싶어도 지주가 되어 준 것은, 내 마음에 떠 있는 아름다운 별들이었다.

  그 뒤로 밤하늘을 자주 보는 버릇이 생겼다. 별은 바라보는 이에게만 빛을 내려보낸다. 이 순간에도 많은 분이 나를 비춰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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