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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혜경 Aug 17. 2023

매이다

  

  지인의 다육식물 사진을 보고 예쁘다고 했더니 보내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사양하면서 예전과는 달라진 나를 느꼈다. 잘 키우지는 못하면서도 꽃을 좋아해서 작은 베란다에 이런저런 식물을 길렀다. 한때는 농사짓는 이가 재미 삼아 키워보라며 보내 준 벼를 커다란 그릇에 길러서 벼를 수확해보기도 했었다. 수생식물인 부레옥잠을 키워서 곱게 피어난 보랏빛 꽃을 보는 재미도 누렸다. 편찮으신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는 동안 나의 소일거리 중 한 가지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나는 새로운 식물은 집에 들이지 않았다. 잠시 여행을 다녀오거나 집을 떠날 일이 생기면 화분들이 마음에 걸렸다. 죽이는 게 싫어서 있는 식물들만 키우기로 했다. 식물뿐 아니라 애완동물이나 금붕어 등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생명 있는 것들은 키우지 않겠다고 이제는 무엇에 매이기 싫다고 했다. 12년간 어머니에게 매였던 것이 그만큼 부담스러웠나 보다. 하지만 내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매이는 것들이 있다.      

  편해지고 싶어서 이용하는 것 중에서 가장 매이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내비게이션이다. 나는 운전을 할 줄 모르지만,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남편에게 알려줘야 한다. 특히 낯선 곳에서는 내비 양의 말이 절대적이다.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고부터 남편은 운전할 때 자기 생각이 없어져 버린 것처럼 보인다. 편리한 대신 예전엔 안내 없이도 이정표를 보고 곧잘 찾아다니던 길을 이젠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가 보다.

  자주 다니는 길에서도 습관적으로 안내를 받는다. 가라는 대로 갔더니 절벽으로 데려다주더라는 말에 웃곤 했는데 가끔은 엉뚱한 곳에 데려다주고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안내를 종료하는 어이없는 일도 있다. 그런데도 우회전, 좌회전 안내하는 그대로 따르는 것을 보면 매인 것이 분명하다.     

  또 한 가지 손에 없으면 불안한 것, 바로 손전화이다. 외출하려고 나갔다가 찾으니 없다. 집까지 들어가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그냥 갈까 하다가 사진도 찍어야 하고 가지고 나가지 않은 사이에 중요한 전화라도 오면 어쩌나. 아무래도 불안해서 다시 들어가서 챙긴다. 살림만 하는 주부인데 그사이에 일어날 중요한 일이 뭐가 있을까만, 그래도 불안한 것이다. 그렇게 챙겨서 들고 가면 무엇 하나. 전화벨이 울려도 가방 속에 넣어두고 받지 않는 것은 다반사다. 반면 걸려 온 전화를 받지 못했을까 봐 일없이 가방을 뒤적거려서 확인해보기도 한다.

  예전엔 약속 시각은 칼같이 지키거나 아니면 아예 일찍 나가서 기다려야 마음이 편했다. 약속 장소도 몇 번이고 확인해 두어야 마음이 편했는데 이젠 좀 느슨하다. 차가 언제쯤 도착할지 시간대별로 입력하면 정확히 알려주니 늦으면 좀 늦는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 어디에서 만나야 할지 장소를 정확하게 몰라도 통화하면 만날 수 있으니 모임 때마다 상습적으로 늦는 이들도 있다.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아도 통화가 가능하니 외우려고도 하지도 않는다. 바뀌면 바뀌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기까지 하니 더 그렇다. 코로나로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을 때 인증을 해야 할 때 손전화가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으니 난감했었다. 어느 사이 손전화는 우리 생활 깊숙하게 들어와서 필수품이 되었으니 매인다는 말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매인다고 느끼는 것은 맞춤법 검사기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나서 맞춤법 검사기에 글을 넣어서 고칠 것은 고치고 올려야 마음이 편하다. 명색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서 맞춤법조차 엉망이라면 안 될 것 같아서다. 그런데 맞춤법 검사기를 이용하다 보니 내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고 맞춤법 검사기라는 것이 모두를 맞게 고쳐 주는 것도 아닌데 그에 의지하다 보니 예전엔 맞다 그르다가 확실했던 것까지 긴가민가하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이렇게 매이다 보면 어느 날엔 내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릴 것 같다.     

  적당하게 매이는 것은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닌 것 같지만, 무엇이든 중독 수준으로 매이는 것은 안 될 것이다. 가끔은 이정표에만 의지해서 목적지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부러 두고 나가서 손전화 없이도 몇 시간쯤은 지내도 좋을 일이다. 친구들의 전화번호도 외워보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그런데 맞춤법 검사기는 어째야 하나. 책을 더 읽고 더 많이 생각해서 예전처럼 맞다 그르다는 정도는 내가 스스로 알아서 써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보니 이런 마음조차 매이는 것 아닐까 싶다.      


                                     오래전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웠던 부레옥잠과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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