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술

‘적당히’를 배워가는 요즘

by 노랑다랑

몸이 좋지 않았다.

아니, 계속 조금씩 안 좋았는데도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쳤다.

버틸 수 있을 만큼만 아프면,

대부분의 일상은 이어질 수 있으니까.


회사는 다녔지만, 그 외의 것들은 멈췄다.

필라테스도, 요가도,

사소한 약속들도 뒤로 미뤘다.

딱 한 달간, 그렇게 쉬었다.

몸은 조금씩 나아졌고,

마음은 그 사이 조용히 모양을 달리했다.


‘끊는다’는 말은 언제나 날 불편하게 했다.

모든 것을 잘라내야만 나아지는 건 아닐 텐데.

그래서 이번에는 전부가 아닌 일부만—

술은 줄이고, 맥주만 끊기로 했다.

내게 익숙하고 위험했던 탄산의 유혹도, 조용히 내려놓기로.


그게 의외로 쉽지는 않았다.

탄산은 어디에나 있었다.

식사 중 무심코 손이 가던 콜라,

커피 대신 고른 상큼한 에이드마저

조금씩, 천천히 그 모든 걸 줄였다.

갈증보다 익숙함이 더 무서웠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다행히 술 생각은 나지 않았다.

회복에 집중하다 보니 하루는 금세 지나갔고,

그러다 찾아온 화성의 1박 2일.

친척언니와 조카들과, 오랜만의 호캉스.

그곳에서 칵테일을 두 잔 마셨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잔을 내려놓고 나서야 알았다.

몸이 아직 다 낫지 않았다는 걸.

마음이 먼저 예민해졌다는 걸.


한달이지나 운동은 다시 시작되었다.

필라테스, 요가.

뻣뻣했던 관절이 제자리를 찾고,

근육이 내 안의 긴장을 녹였다.

맥주 없이도 나쁘지 않은 일상.

어쩌면 맥주가 없어서 조금 더 나은 나.

어젯밤, 삼겹살 앞에서 맥주가 떠올랐지만

‘내일의 피로’를 핑계 삼아 고개를 돌렸다.

작은 승리 하나, 마음속에 조용히 저장했다.


그리고 오늘.

비가 왔다.

아침엔 추적추적, 점심 무렵엔 소나기.

젖은 공기와 흐린 하늘,

왠지 마음이 느슨해지던 날.


친구에게서 톡이 왔다.

“막걸리에 감자전 땡긴다.”

그 짧은 한 줄이 마음을 흔들었다.

우리는 약속을 잡았고,

나는 퇴근하자마자 차를 집에 두고 신촌으로 향했다.


곱도리탕에 소주 한 병.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

배가 불러 감자전은 입맛에 덜 맞았지만

다이소에서 귀여운 곰돌이를 발견했다.

오천 원으로 얻은 작고 확실한 행복.

막걸리 리뷰 이벤트로 받은 아이스크림까지—

조용히, 은근히 좋은 하루였다.


식당을 나서다

옆 테이블 무리를 힐끗 보았다.

스무 살 조금 넘은 얼굴들,

술잔을 부딪치며 웃음이 터지는 저녁.

그 시절 나도 저랬겠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묘하게, 지금의 내가 더 좋기도 했다.


‘적당히’라는 말을

예전엔 몰랐다.

무언가를 끝까지 밀어붙이거나,

전부를 포기하거나.

나는 언제나 극단의 양 끝에서 방황했었다.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참는 법도, 즐기는 법도

조금씩 익혀가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연습이 제법 잘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