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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가써니 Aug 09. 2024

반바지를 잘 찾는 여자

우린 서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 내 검정반바지가 안보이던데 반바지 봤어요??


바지가 없단 말에 내가 빨래를 잘못 정리했나 싶어서 당황스라운마음으로 드레스룸에 들어가 바지들이 걸려있는 칸에 이것저것 뒤져보며 반바지를 찾아다가 가져다주었다


: 내 반바지 못 봤어요? 왜 항상 반바지가 없어지지 그 검은색 반바지가 없어요


바지가 또 없다고?? 잘 걸어 뒀는데 내 성격이 그 자리에 그게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구겨 넣었을 리 없다 이번에도 내가 혹시나 잘못 정리했나 싶어서 들어가 보면 지칸에 떡하니 걸려있다 

여기 걸려있는데 왜 못 찾는 거냐고 물어보면 반대편을 찾고 있던 이 사람은 


: 어? 아니야 없었어요 분명히 없었어 미안해요


라고 말하며 사과를 한다 거기서 찾으니까 안 나오지.. 아무래도 정리를 하는 공간이 나만 알고 있는 공간이라서 이 사람이 못 찾는구나 싶어 정리공간들을 다시 한번 설명해 주었다 외출복 일상복 작업복 등등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바지가 없다고 또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이 사람에게 물었다 

이번에 빨래한 기억이 없는데 마지막에 벗어서 어디에 뒀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잘 벗어서 눈에 보이게 컴퓨터 옆 테이블에 올려뒀다고 말한다.

컴퓨터 옆테이블에 뒀는데 애가 어딜 갔겠는가 주변을 살펴보는 데 있어야 할 자리에 반바지는 무슨 아무것도 없었다 허리를 숙여 바닥을 보니 테이블뒤로 넘어가서 바닥에서 먼지투성이가 되어있는 반바지가 보였다 


 나보다 6살이나 많은 남자가 집에서 바지를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걸 또 나는 너무 잘 찾는다 

더 웃긴 상황은 주변에 쌓여있는 이 티셔츠 들이다. 빨래를 여기 이 자리에 정리하면 된다고 구역별로 설명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 작은 방안에 여기저기 옷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 이 방에 무슨 티 가 이렇게 많아요


: 다 입을 거예요


왜 서랍에 안 넣어두고 여기에 이렇게 올려두었냐고요 


: 자꾸 안 보이니까 눈에 보일 때 바로바로 찾아 입으려고 가져다 뒀어요~


아직은 이런 모습도 좋아 보일 때니까 그냥 귀엽다 생각하며 웃기로 한다 언젠가 이 말들이 귀찮고 저 사람 뭐 하는 거지 싶을 날도 올 거라는 거 아는데 그럴 때가 오면 화내기로 하고 지금은 그냥 웃기로 하자 


: 들고 가서 정리하세요 빨리~ 



어릴 때 아빠는 그렇게 엄마만 보면 양말을 찾고 팬티를 찾아다니셨다 또 외출하고 돌아오시면 아빠는 항상 외출복들을 헹거에 걸쳐 쌓아 두는 습관이 있으셨고 엄마는 그걸 보면서도 화를 내지 않으셨다 왜 화를 안 내셨냐고? 이제 보니 화낸다고 바뀔 사람이 아니라는 거 아니까 화내봤자 내속만 타지 싶으셨던 게 아닐까 그렇다고 아빠가 아예 안 치우는 것도 아니셨다 그냥 쌓아두시다가 모였다 싶으면 한꺼번에 가져다가 빨고 건조된 빨래는 본인이 챙겨서 서랍장에 정리하셨다 엄마는 그런 아빠의 방식을 크게 터치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빠의 헹거를 방 모퉁이에 두셔서 눈에 거슬리지 않는 공간에 인테리어처럼 두셨다 어느 날 아무것도 없는 날에 그 공간이 언제 이렇게 텅 비어있었지 허전하게 느껴질 만큼   

 

 내가 살아온 방식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결과물인데 결혼과 사랑이 바꿔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거라 생각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길 바란다고 화도 내보고 함께 사는 공동체 생활이라며 투닥투닥해보야겠다 싶었다 근데 그냥 함께하는 일상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깨달음의 때가 오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은 정리해야 하는 여자와 다시 잠들 때까지 정리 없이 이불을 다시 덮어도 되는 남자

버릴 때를 위해 페트병은 잘 씻고 라벨도 뜯어서 정리해 두는 여자와 버릴 때 하면 된다며 일렬로 세우는 남자

설거지하면 물기 닦아서 자리 정리해야 끝나는 여자 마를 테니 끝내는 남자

나갈 때 집정리를 해서 돌아왔을 때 깨끗한 공간이길 원하는 여자 돌아와서 치워도 괜찮다는 남자 

나갈 때 집정리를 해서 돌아왔을 때 깨끗한 공간이길 원하는 여자 돌아와서 치워도 괜찮다는 남자 


당장 눈에 보이는 게 이런 것들이니까 나는 노력을 하는데 너는 어떤 노력을 하는 거냐고 생각을 되짚어보면


침대를 정리하는 여자와 한 달에 한번 모든 침구류를 세탁하는 남자 가 있었고

분리수거를 정리하는 여자와 가져다 버려주는 남자가 있었고

설거지를 즉시즉시하는 여자와 언제나 상대를 위해 모든 요리를 해주는 남자 가 있었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눕는 여자와 널브러진 양말들과 옷가지를 모아 세탁기를 돌리는 남자 가 있었다.


사는 게 너무 다른데 우리 정말 잘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우리 너무 달라서 다행이다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내가 부족한 부분 당신이 채워주고 있었구나 그 사실들을 알게 될 때면 상대의 존재가 고마움으로 와닿을 때도 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우리는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어가며 함께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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