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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가써니 Aug 06. 2024

우리 엄마는 그랬다

나는 그랬다


본격적으로 집을 합치기 전 아빠에게 인사를 드리기로 하던 때였다 우리 아빠는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남자를 한 번이라도 소개해주려 할 때마다 결혼할 남자 아니면 절대 안 본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셔 오셨고 이번엔 엄마도 결혼까지 허락한 만큼 엄마가 허락하면 나도 오케이 라면서 한번 오라 해라 라며 흔쾌히 만나보겠다고 말씀하셨다


: 야 아빠가 예비 사위될 사람 온다고 아주 머리 염색한다고 셋째네 헤어숍에 가고 목욕탕까지 가셨다

너희 아빠한테 막냇동생 남자친구도 결혼할 거 아니면 안 본다고 하시는 거 큰딸 예비사위 왔을 때 어떡할라 그러냐고 막상 봐서 어색해서 죽느니 막내 남자친구 보면서 예행연습이다 생각하고 보라고 해서 봤다 


어떤 느낌이실까 우리 아빠는 남자친구 생겼단 내 말들에 그건 남자친구가 아니라 친구라며 항상 말씀하시던 분이셨다 딸의 남자친구는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으시지만 사위에 대한 로망은 있으신듯했다 집안에서 남자가 혼자인 게 가끔은 외롭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사위들이 (4명이나) 생기면 목욕탕에도 같이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었다 한때는 그런 아빠의 로망에 맞춰줄 남자를 만나고싶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엄마한테 처음 소개해주는 자리에서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는데 막상 집에 오니 편안했다 남자친구에게 집을 보여주는 건 잊어버릴 만큼 나도 우리 집에 1년 만에 왔던지라 그동안 바뀌어있는 집에 구경하기 바빴다  


: 집이 많이 바뀌었네 리모델링 많이 한 것 같은데


: 시골집이라서 불편하다고 애들이 안 오려하니까 니네 엄마가 애들 오면 편하게 있으라고 여유될 때마다 고쳤지, 근데 이번엔 너네 동생들이 오는 길이 멀어서 안 온다더라


아빠의 말에 나라도 옆에서 엄마아빠 챙겨야 했던 게 아닌가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가족을 떠나 타 지역에 가있던 내가 너무 했구나 라는 감정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애들이 많으니까 내가 아니더라도 애들이 부모님께 잘하겠지 미뤘던 생각들이 다 같은 생각들일줄이야. 결혼을 준비하면서야 부모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았는데 고기불판옆으로 소고기가 있었고 옆에는 갈비찜이 있더니 오징어 국에 삼계탕이 되어있는 시골토종닭 한 마리가 커다랗게 누워있었다.


: 너희 엄마가 너네 온다고 접시부터 물컵에 쟁반까지 다 새로 샀다


: 아니 사위들 인사 다하면 쟁반도 새로 사는 게 좋다 하더라고


어쩐지 식탁 위에 못 보던 반찬그릇들 우리가 언제부터 쟁반을 썼다고 쟁반까지 전부다 새것들이었다

사위가 뭐라고 우리 엄마 이요리 한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갈비 찜한다고 삼계탕은 아빠가 한다고 바쁘셨다 했다 우리 엄마는 요양병원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원래는 아빠를 도와 하우스일을 하셨지만 할머니가 치매가 오시게 되면서 요양원에 가셔야 하셨는데 젊을 적에 할머니랑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요양병원에 직원으로 입사를 하시면서 할머니를 모셨고 지금은 근무기간과 일을 인정받아 팀장까지 되셨단다 그리고 오늘 사위 온다고 연차 써서 쉬는 날이라는데 그 하루를 이렇게 하루종일 요리한 것이다



: 상견례는 어머니께서 전라도 까지 오시는 게 힘드실 텐데 우리가 부산으로 갈게 거기서 하기로 해요


: 아니요. 어머니 아버님께서도 오시기 힘드실 텐데 제가 엄마 모시고 광주로 오겠습니다


: 아니야 우리가 가면 돼!! 우리도 결혼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처음이니까 맞추려고 하는 거야 결혼식도 부산에서 할 거지? 그 건보통 남자가 있는 쪽에서 한다더라 우리 쪽에서는 피로연으로 준비하면 되니까 신랑 쪽 손님들이 더 많을 거고 결혼식은 부산에서 잡도록 하자


결혼식은 그럴 수 있으나 상견례까지 모든 상황을 전부다 신랑 쪽에 맞추겠다는 엄마의 말에 답답함을 느꼈다 광주에서 부산까지 기차가 없어서 버스를 타야 한다 요실금이 있던 엄마는 장시간 버스를 타기 힘들었으면서 버스를 타고 부산까지 오시겠다는 말인 건데 이렇게 까지 다 맞춰가려 한단 말인가 대체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냐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모든 이유에는 내가 혹시나 타 지역에서 살면서 남편과 시댁의 보호를 받지 못할까 걱정되는 마음인걸 아니까 그저 이쁨받길바라고 사랑받길 바라는 마음인걸 아니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혹시나 나의 부족한 말주변으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을 부모님의 노력과 다짐이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릴까 봐..


식사시간이 끝나고 아빠는 우리가 쌀을 사 먹는 단 말에 옆동네 아저씨가 벼농사를 한다고 쌀 3k를 챙겨다 주셨고 엄마는 먹을 김치 없을까 봐 김치를 직접 만드셨단다.


:  필요해 김이랑 참치랑 햄 은 내 돈 주고 사기엔 아까운 거야 가져가 고춧가루랑 참기름은 방앗간에서 준비해 왔어 요리해먹을 일 있으면 사용해


: 지운이가 너한테는 말도 잘하고 표현도 잘하냐?


가려는 우리에게 아빠는 몰래 나에게 물었고 아무래도 경상도 남자다 보니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무뚝뚝한 면이 있어서 아빠는 나에게도 그러는 줄 알고 걱정이 되었나 보다 나한테는 전혀 다르다고 웃으며 말하자 믿는 것 같지는 않지만 너한테만 잘하면 되지 라며 돌아서셨다.

우리 아빠 서운하셨다.

짐을 한가득 안고 집을 떠났던 것 같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하시던 말이 ' 여자는 결혼해서도 일을 해 야해 집에 있으면 바보 되니까 사회생활하면서 당당하게 살아, 집 앞을 나가더라도 대충 하지 말고 립스틱이라도 바르고 가야 한다 자신을 가꿀 줄 알아야 남들에게 무시 안 당해 ' 이렇게 말씀하시던 분인데 결혼 앞에서 부모님의 입장은 내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저녁에 집에 도착했단 연락에 엄마는 또 한번 말하셨다


: 시어머니께 잘해야한다. 엄마가 살다 보니까 느끼는 건데 너희 아빠가 아빠 없이 혼자 가장의 역할을 했잖아 아빠한테 할머니가 전부 셨을 거 아니야 너희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아빠에게 세상이 덜 두려웠을 것이다 생각하니 그 이유하나로 엄마가 할머니께 잘하려고 노력하게 되더라 내 남편의 든든한 존재라는 게 얼마나 고맙니 그런 마음으로 어머님을 모셔야 하는 거야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한테 잘하는 것만큼 고마운 게 없다 그러니까 너도 어머니께 잘해드려


우리 엄마지만 멋있다 너무 현명하다고 느끼는 부분들도 많았으니까 저렇게 말해주시는 엄마의 말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알면서도 반박하고 싶은 감정이 더 컸다.


: 엄마,  상대의 집에 기본은 하되 그 이상을 생각하는 건 나도 저 사람도 각자의 몫이야


: 너는 애가 왜그렇게 생각하니


: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상대가 나와 같을 순 없어. 내가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 그만큼 상대도 나와 같아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잖아 효도라는 개념이 각자 다른데 그걸 어떻게 다 충족해 가면서 살아 각자 자신의 집에 최선을 다하고 상대의 부모님에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 아닐까


: 너네 세대는 이해하기가 어렵구나


: 엄마, 엄마 딸이 시댁에 기본만 하고 싶은거야


내 말에 엄마는 말을 잃으셨다. 꾹꾹 눌러참던 감정의 표현이 저렇게 튀어나와 버린것이다  전에 한번 이런 부분으로 남자친구와 의견대립이 있었던 적이 있다

나는 첫째로써 집안의 기념일들을 맡아서 진행해야 했던 만큼 상대도 함께 식당을 알아봐 주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이다 보니 부담되어하는 모습에서 그래도 가족이 될사람 부모님의 행사인데 같은 마음으로 신경써줄거라 예상했던 나는 서운함을 느꼈고 반대로 어머니의 생신좋은선물과 음식들을 만들어서 챙겨드리자는 나의 의견에 원래 그런 적이 없는데 그렇게 많은 정성으로 신경 쓰는 건 맞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과 나는 서로가 부모님을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구나 느꼈던 것 같다

이후 우리는 결론을 내린 게


< 각자의 부모님의 행사나 기념일에 대한 계획은 각자가 생각하기로 하고 서로 상대의 계획사항이나 요청사항에 따라주며 함께 준비하도록 합시다 >



 결국 '효도'라는 것도 서로 생각하는 개념이 맞아야 같이 전달을 하지 한쪽은 효도= 헌신, 한쪽은 효도=자유 라고 해버리면 어떻게 맞춰 간단말인가 그럴 거면 각자 부모님은 각자 챙기면서 상대가 원하는 방식에 맞춰 함께 준비해 드리면 되는 거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말하는 의도와 의미는 알겠지만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았다.


그냥 결혼을 앞둔 딸의 입장에서 정말 엄마에게 듣고싶었던 말은,  너를 희생하면서까지 잘하려고 애쓰지 마 남편에게도 자식한테시댁에 그렇게까지 할필요없어 살다보면 너를 위한 하루들이 없다는걸 느낄때가 많을거야  그렇지만 그럼에도 너를 가장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여자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라고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냥 그런 엄마의 솔직한 말이 듣고싶었다

그렇게라도 한번은 엄마가 먼저인 말을 듣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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