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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가써니 Sep 06. 2024

자식 n년차
시댁에 입사하겠습니다

나에 친구에게 말하고 싶다.

결혼은 너와 내가 잘 사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동시에 부모님이 두 분이 되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자식인생 n연차라서 경력직으로 입사함과 동시에 그 시간이 빈 깡통 세월인지 비로소 너는 너와 마주 보게 되겠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새로운 며느리와 사위를 맞이하는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싶다 

자식인생 n연차 경력사원 부족하지만 이쁘게 봐달라고 그들도 그게 맞는 거라 살아왔을 거고 시댁/처가로 이직을 하고서야 자신이 어떤 자식이었는지 알게 되었으니 신입사원이다 생각하고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봐 주세요~ 




 쉬는 휴일 어머니의 연락에 반가운 마음으로 받았다 

어머니께선 먼저 연락 오시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주로 안부연락은 남자친구를 통해 전하셨고 나도 특별한날아니면 연락드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의 연락은 언제나 반가웠다 

 백화점에 간 김에 일하고 있는지 궁금하셔서 방문하셨다는 어머니의 말에 반가웠던 마음을 잊을 만큼 머리가 멍해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가 딸 일하는 거 궁금하다고 방문하실 때면 불편하니까 오지 말라고 매번 같은 말만 해왔다 다른 딸들은 안 이렇다며 서운해하는 엄마를 볼 때면 나의 불편함을 몰라주냐며 답답하기만 했었다 서비스업이니까 그날따라 고객이 나에게 화내는 장면을 보여드릴지 모르는 거고 가족이니까 더 신경 써드리고 싶은데 신경 쓸 수 없는 상황들이 미안했기에 마음이 불편해서 더욱 방문을 막았었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어머니께는 뭐라고 말을 전해야 하나 머리가 아파왔다 



- 부모한테 잘해야 시부모님을 만나도 부모한테 하듯이 하지 

  부모한테도 못하는데 시부모님한테 잘하는 게 쉬울 것 같니 



우리 아빠가 하신 말씀이다 그땐 이 말이 그렇게나 잔소리 더니 막상 이렇게 되어보니 정말 내가 그동안 자식으로 살아온 시간이 속이 텅 비어있는 깡통과도 같았구나 알겠더라 정말 겉모습만 자식이었나 보다. 

엄마아빠에게 잘 지내시냐고 안부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던 나는 어머니께 안부연락 한통이 그렇게 안되더라, 엄마 아빠에게 어버이날이라고 찾아뵙고 밥 한 끼 하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생일도 아니니 넘겨도 되는 기념일이라는 생각에 잊고 있던 어버이날 당연하다는 듯 어머니께도 연락을 드리지 않아 얼마나 난감했는지 모른다..  

엄마의 취향에 맞는 선물을 사본적 없던 나는 어머니들의 취향은 전혀 몰라 돈으로 주는 며느리였고, 엄마를 위로해 본 적 없던 나는 어머니께서 힘들다고 말하실 때 사회적 언어를 빼면 어떻게 위로의 말을 건네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더라.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해서인지 이 사람의 모습에서도 어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25살이 되던 해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어릴 때 축구를 하고 게임을 함께 했던 기억은 있으나 20대지만 어렸기에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거나 단둘이 밥을 먹어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빠와 둘이 있을 때면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어려워하는 게 보였다 명절 때면 이것저것 선물을 보내드리고 연락을 드리는 건 할 수 있지만 막상 둘이 있는 걸 보면 하늘이 그렇게나 재밌나 보다 둘 다 하늘만 보고 계신다 


나도 부모님께 나름대로 잘한다고 표현했던 마음들이 오답이었구나 라는 걸 우리 부모님이 아닌 남의 부모님의 반응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정말 많은 선물들을 사드린 것 같은데 알고 보면 인터넷이 뽑아준 선물 리스트 들이였고 엄마가 힘들다고 하는 말은 그저 하소연이었기에 들어만 주면 된다는 생가로 일어났는데 돌아선 내 뒤에서 위로의 말을 바라고 있었을 엄마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집에 가면 그저 반갑고 속 섞이는 말을 했어도 그저 좋아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잘못하고 부족했는지 몰랐던 것 같다 


남자친구는 이틀에 한 번은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분명 집에서 20분 거리에 지내시는데도 어머니와 하루일과를 소통하면서 잘 지내는지 짧게 라도 안부연락을 주고받는 걸 보면서 처음에는 그게 그렇게 신기해 보일 수가 없었는데 부족한 나를 대신해서 기념일들에 날씨가 많이 안 좋을 때 우리 부모님께 먼저 연락을 하는 건 남자친구였다 상대가 부모님께 하는 걸 보면서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늦게나마 배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랑 전화로 싸우고 난 뒤에는 먼저 엄마한테 연락해서 괜찮으시냐고 말해주는 것도 남자친구였다 

나도 뭔가는 잘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 만약 아버님이 살아계신다면 뭐를 가장 먼저 해보고 싶어요 


: 해보고 싶은 거라기보다 그런 생각은 해요 아빠가 집에만 있는다고 엄마가 뭐라 하셨거든요 엄마는 아빠가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하길 바라셨어요 그때 '아빠 친구들이랑 가봤는데 저기 오리백숙 맛있는 데 있어요 우리 오늘 거기서 밥 먹어요'라고 말하는 생각.  친구들이랑 먹기 바빴던 그 술, 아빠랑 술 한잔 하면서 대화 한번 해볼걸 그런 생각은 해요. 



부족했으니까 잘 할 일만 남은 거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까 부디 우리 엄마아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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