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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가써니 Aug 30. 2024

인생지사 새옹지마

친구사이도 모르는 게 인생이야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 축하를 받아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초등학교시절에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여 엄마는 생일상을 준비해 주셨고 모두와 함께 생일 축하한다며 

케이크에 불을 켜고 축하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땐 내가 세상에 공주님이 된 것처럼 기뻤고 좋았다 

성인이 되어가면서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는 게 주목받는 일상이 된다는 게 얼마나 피로한 인생인지 알게 되어가며 나를 들어내기보다 나를 숨기는 게 살아가는데 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결혼 축하해


 부모님을 통해 전해진 청첩장들이 다른 가족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게 되는 게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가족들의 관심에 피로감이 쌓여갈 때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친구의 연락도 받게 되었다. 


어릴 때 우리 집안에 같은 해에 태어난 애만 3명이었다 다들 나이가 같았기에 친척이라는 이유가 우리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고모의 딸은 다른 지역에서 살았지만 작은집의 아들은 같은 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에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니며 동창이자 가족으로 자랐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날이 매번 기다려지는 행사 중에 한날이었던 건 할머니가 계시는 우리 집에 그 애들이 모두 모이기 때문이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만큼 너무나도 반가웠던 우리는 정말 온종일 웃으며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악동들이었다 동네를 가득 채우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시끄러우셨을 텐데 아무도 뭐라 하시는 주민분들은 없으셨다 그날은 먼 길 찾아오는 가족들의 모임 명절이었으니까 


초등학교를 지나고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를 들어갈 우리는 사춘기에 직면하는 나이가 되었다 

서로의 진로가 정해지게 되면서 다들 각자 원하는 고등학교에 하나둘 진학을 앞두게 되었고 세명중 가장 큰 사춘기를 겪은 건 바로 나였다. 나는 공부로 성공할 수 없는 머리인 건 진작에 알았다 그랬기에 진학부분에서 제과제빵이 있는 전문 고등학교를 원했고 부모님은 대학까지는 가야 한다며 일반계고등학교를 원하셨다 

생각이 달랐던 우리는 진학선생님까지 중재에 나설 만큼 의견충돌이 오갔었고 결국 아빠의 말씀대로 일반계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입학한 지 1달째 되는 날 자퇴를 하게 되었다


: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해 검정고시 학원에 가자. 너네 아빠 자기 때문에 니 인생 이렇게 됐다고 맨날 울고 있는데 자식이 이렇게 되면 부모라도 정신 차리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엄마는 생각해. 당분간 친구도 만나지 마 개네 부모님들이 너 자퇴하고 자기 자식들 만나는 거 좋아할 것 같아? 다들 뒤에서 얼마나 말들이 많은 줄 알아?! 너도 정신 차려. 그때 그 고등학교를 간 것도 자퇴를 하게 된 이 상황도 결국 네가 선택한 거야. 선택을 했으면 책임져야지 언제까지 부모님 탓만 하면서 이렇게 지낼 거야. 가자, 방법을 모르겠으면 엄마가 하자는 대로 따라와. 


좌절감에 원망으로 가득하던 나를 보며 엄마는 강하게 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셨고 이때의 엄마의 말들은 어린 나에게 그대로 상처와 기억으로 남아버렸다 어쨌거나 강인한 엄마 덕분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게 되었는데 신기했던 건 검정고시학원에 모인 내 또래의 친구들이었다 다들 각자의 이유들로 모였지만 정상적인 고등학교에서 본다면 담배를 피우고 염색을 하는 규율에서 벗어난 모습들이었지만 그런 애들만 모아놓고 보니 핫초코를 좋아하고 언니들은 무서워하는 의외로 순수한 면도 있는 아이들이었다는 것이다 혹시나 그들 안에서 잘못 무리 지어 다른 길로 빠질까 봐 엄마는 매일 말했다 


: 너는 그 애들과 달라 알았지. 그리고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야 한다. 이거 하나는 명심해 네가 지금 다른 애들과 다른 길을 간다 해서 이상한 거 아니야 엄마아빠는 우리 큰딸이 여전히 자랑스러워. 우리는 네가 잘 이겨낼 거라고 믿어. 그러니까 설아 너는 지금부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상상해 봐 상상하면 이뤄낼 수 있는 힘이 생긴데 어떤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지 같이 꿈꿔 가보자. 우리 같이 지금을 잘 이겨 나가는 거야. 



주문처럼 나를 붙잡고 말씀하셨다 학원에 가기 싫은 날도 많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학교에 소속되어야 할 나이에 어딘가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생각은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는 착각을 만들어냈다. 마음의 외로움에 방황하던 나는 엄마와 문제집을 사러 간 서점에서 우연히 나도 모르게 잡게 된 에세이 책 한 권을 시작으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 수호천사 - 로나 번>  '당신이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도 수호천사는 당신 곁에 있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우연히 집어 들었던 이 두꺼운 책이 나의 방황에 큰 위로와 희망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외로울수록 책 속으로 파고들었다 수많은 자기 개발서, 에세이들 책 속의 작가들이 나의 친구들이었고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끝없는 질문 속에 책 속의 저자들은 주인공들은 방법과 방향 알려주었다 



 학원은 한 권의 책으로 1년 동안 반복하는 수업일정이었기에 일주일에 3번은 학원을 가서 정규 수업을 들었고 4번은 도서관에 가서 자율학습을 하며 도서관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도 시험을 준비해 갔고 학원에 가지 않았다는 알림 문자를 받으실 때면 도서관이라는 나의 말에 엄마는 믿어주었으며 자퇴한 지 1년 뒤에 나는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졸업장이 있으니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호기심에 지원서를 넣어본 전문 대학교에 합격을 하게 되며 운명처럼 19살에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 너 자퇴하고 절에 와서 기도를 하는데 스님이 우리 아기 들으시더니 그런 말을 해주셨어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결말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켜보자고 말씀해 주셔서 그때 큰 힘이 되어 주셨어 


: 하하하~ 인생에 펼쳐지는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예측 불가능하게 펼쳐질 수 있다는 뜻인데 그 이야기를 풀어보면 나쁜 일이 생겼지만 좋은 결말로 찾아들었다는 일화가 얽힌 말이에요 고생 많았어 대학에 합격한 거 축하한다 


합격소식과 함께 엄마아빠는 나를 평소 다니시는 절에 데려와 스님께 인사를 시켰고 절에서 앉아 따뜻한 차를 한잔 하며 스님이 우리에게 해주신 말씀이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인생이고 지금 내가 모두가 비판하는 절망 속에 있지만 이 또한 영원한 게 아니며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어린 나이지만 몸으로 경험하며 배워나갔다 나의 소식은 지인들에게 가족들에게 빠르게 전달되며 걱정덩어리에서 대단하다며 엄마에게 칭찬으로 연결되었고 친구지만 가족인 힘든 순간들에 내 곁에서 연락을 주고받았던 여자인 친척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었다.   



: 나 이번에 대학 간다 2년 대지만 그래도 다행이야!!  


: 근데 너 18살이잖아 어떻게 대학을 가? 


: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으니까 나이가 어리더라도 가능한 거 같아 


: 그 대학이 후진곳인가 보다 너 같은 애도받아주고 



그때 우리의 나이는 18살 끝자락이었다. 내가 미처 배려하지 못했던 건 19살 고3을 코앞에 두고 대학은 갈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시기에 있는 친구들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너는 내가 가장 힘든 시기를 옆에서 다 지켜봐 왔고 응원해 주면서 함께 해줬기에 기쁜 순간마저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착각을 했었나 보다. 그 일로 상처받아 엉엉 울다가 어린 마음에 부모님께 털어놓은 말이 일파만파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져버렸다 아빠는 당장 고모에게 전화를 해 사실확인을 하셨지만 아니라고 말을 했다 하셨고 이후 고모네가족과 우리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빠가 그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게 되면서 고모는 아이가 어린 마음에 질투를 하여 건넨 말이라며 미안하다고 자리에서 대신 사과를 하셨다 가족이었기에 상처가 배가 되었고 상처가 아물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학교를 가기 위해 기숙사에 들어간 이후 명절이 아닌 날에 미리 집에 다녀갔고 대학교에 적응하기 바빴던 나는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도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기게 되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결혼을 축하한다는 연락이 왔다 



- 결혼 축하해 


그 친구의 연락이 반갑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우린 30살이 되었고 조금 더 성숙해져 있었기에 반갑지 않은 연락에도 사회적으로 포장하여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 명절에 너희 집에 갈 때 외할머니를 뵐 때 네가 생각나지 않은 적이 없었어 연락처를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어서 너한테 연락할 방법도 없었고.. 결혼식 청첩장으로나마 너한테 연락할 수 있었던 거야 축하한다는 말은 하고 싶어서 연락했어 결혼 축하해 


- 축하해 줘서 고마워 다음 달에 결혼식장에서 얼굴 보면서 제대로 인사하자 



그때와는 다르게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성향도 바뀌고 생각하는 것도 많이 달라졌으니까 지금의 우리라면 좀 더 어른스럽게 인사하며 아무렇지 않게 지난날의 시간을 물어볼 수 있을까 

네가 나에게 용기 내 어준만 큼 나도 우리 사이에 용기를 내면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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