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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가써니 Aug 23. 2024

엄마와의 데이트

결혼이 나를 엄마 곁으로 가는 길이 되어주었다.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본가로 간 주말이었다. 공기 좋은 산에 가고 싶단 엄마의 말에 산중에 있는 큰 절에 다녀오자며 오랜만에 둘이 절 데이트에 나섰다. 역시 산이라서 그런지 공기도 좋고 바람도 좋아서 엄마랑 단둘이 데이트하는 지금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그런 짙은 향기가 났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느낀 건데 엄마랑 참 많이 친해졌다는 것이다 우린 참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사이였는데 결혼이라는 걸 준비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이해한 사람이 엄마였고, 곁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것도 엄마였다 평생 사이가 좁혀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관계가 결혼이 나를 엄마 곁으로 가는 길이 되어주었다는 걸 지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 애들이랑은 연락 안 해? 


: 지들이 사과하고 연락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없다 생각하고 살 거야 



 1번이 타 지역에 있었기에 2번이 장녀노릇을 해왔고 언제나 동생들과 엄마아빠의 중간역할을 해왔던 것 같다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거기서부터였다 2번은 현세대에 맞춰 부모님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동생들을 대변하여 바뀌지 않는 부모님들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할 때 선이 그어져 버린 것이다.  부모님의 현실상황을 자신이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나도 예전에 했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살아온 방식을 바꾸는 건 쉬운 게 아닌 걸 알았고 특히나 부모님의 일생은 바꾸는게 아닌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는 걸 나이가 들어서야 알았는데 2번도 그걸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게 아닐까 


: 엄마 우리 어릴 때 엄마가 우리한테 뭐라 말했는지 기억나? '나는 너희를 전부 다 지원해 줄 형편이 안된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계획을 세워서 말을 하는 애들만 내가 지원을 해줄 거다'.

 덕분에 우린 어릴 때부터 어떤 사람이 되어갈지 생각을 끝없이 하며 계획을 세워갔어 그 결과 지금 다들 자기가 원하는 직업 갖고 그 자리에서 인정받으면서 일하고 있잖아 나는 엄마의 방법이 현명했다 생각해 


: 그러면 뭐 하니, 다들 자기들만 살기 바쁜 거지 1년에 몇 번이나 집에 오는 줄 아니? 전화만 했다 하면 바쁘다고 빨리 말하라 그러고 전화하기가 어려워서 못해. 자식들이 지들 머리 좀 컸다고 엄마아빠를 가르치려고만 하더라 예전엔 너희랑 싸우면 먼저 엄마가 풀자 사과하고 했지만 엄마가 갱년기가 오고부터 그게 힘들어졌어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냥 내 마음이 먼저야 나도 상처받았어 

 

 

 회사에서 사용하는 쿠션언어를 내 가족에게도 사용했더라면 서로가 서운할 일이 얼마나 생길까. 

 



: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그걸 알기엔 본인들이 더 서운하다고 말하고 있어 

애들이 엄마아빠 마음을 알려면 시간이 걸릴 거야 나도 오래 걸렸잖아 엄마 


: 부모님의 시간은 너희가 다 깨닫고 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거야 나중에 죽고 나서 후회하겠지 


: 근데 엄마는 엄마랑 똑같은 애들이랑 싸우면서 아 애들이 나랑 똑같구나 생각이 막 들지 않아?? 2번은 엄마랑 성격 똑. 같잖아 3번은 엄마 아빠 반반 닮았으니 그래도 엄마 성향의 일부분인데 이러면 자기랑 싸운 거 같다 생각 들지 않나?? 그럼 애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저걸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답이 안 나올까? 



:.. 너는 너랑 똑같은 애 딱 2명만 낳아서 키워.  4명 낳으면 너네 신랑 고생하니까 더도 덜도 말고 그냥 

딱 둘만 낳아서 겪어봐. 지금 네가 하는 말이 되나 내가 지켜볼 거야 너는 애 어떻게 키우나 

 

: 나도 엄마랑 닮았어! 


: 아니 너 나 안 닮았어 저리 가. 네 아빠 아주 똑같이 닮았어 



우리는 언제나 대화가 똑같다. 언제나 엄마는 서운하셨고 나는 엉뚱했고 그런 나에게는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보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그래서 자식은 어떻게 키우는 게 맞느냐고 나에게 엄마는 가장현명하고 그래서 가장 존경하는 분인데 그런 엄마도 자식 키우는 건 어려웠다고 말하면 나는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 걸까..  분명 우리는 자기 밥벌이를 하고 살아서 우리 잘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다들 가족을 벗어나 각자만의 세상에서 일 인분도 하기 바쁜 현실에 빠져있었다 부모님 기준에 자식들은 성인이었고 자식들은 부모님에게만큼은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명절에 백화점에서 비싼 소고기와 과일세트를 보며 우리 엄마아빠도 비싸지만 좋은 걸로 사다 줘야겠다 생각하며 사고 싶은 거 꾹 참고 현금과 함께 화려한 보자기에 싸서 사들고 오는 2번과 애들 온다는 말에 축산시장에서 가장 좋은 고기들로 준비해서 재래시장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과일들로 골라 하루종일 요리해 두고 기다렸던 부모님들에게는 선물들이 괜한 미안함이었고 그래서 했던말이 '비싼 거 사 오지 말고 정말 사 오고 싶으면 다음엔 집에 있는지 물어보고 맞춰서 준비하자 아니면 현금으로 주면 엄마가 필요한 거 살게 백화점은 비싸기만 하잖아'였다 부모님은 모두를 위한 선물을 말하고 2번은 내가 준비한 선물을 말하고 있었다 



아저씨들끼리 모여 앉아 얘기하다가 노을이 질 무렵 '복날이라 자식들이 밥 먹으러 내려왔다 하네 나 먼저 가네' 말하며 하나둘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 연락도 없는 핸드폰만 바라보다 3번에게 문자를 보냈다 '복날인데 치킨이 먹고 싶네'라고. 1이 사라졌음에도 답이 없는 핸드폰을 보며 저물어가는 하늘만 바라보다가 집에 들어갔더랬다 그 사실을 알고 상처받은 아빠를 데리고 엄마는 삼계탕 먹으러 나가셨다 말하셨다 그리고 저녁 늦게 3번에게 문자가 왔더랬다 '본사 미팅하다가 답장하는 거 깜빡했어'




해가 쨍하니 머리위에 있었다 이제 그만 내려가 점심을 먹을 시간이였다 

얼마나 허탈하실까 자식을 4명이나 키우면서 한평생을 애쓰며 걸어오셨을텐데 

우리 아빠 한밥상에 다같이 앉아 밥먹는 이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엄마 딸들이랑 방에 모여앉아 수다 떠는게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 였나.. 



: 엄마 나 배고파 밥 먹으러 가자 엄마 뭐 먹고 싶은거 없어? 


: 몰라, 나는 내가 뭐 좋아하는지 다 까먹어 버렸어 


: 그럼 우리 삼계탕 먹으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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