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동안 투명인간이 되어 겪은 어느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
1. 사라진 것처럼
아침 7시 38분.
스마트폰 알람 소리 대신 낯선 고요함에 눈을 떴다.
방 안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뭔가가 확실히 이상했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던 찰나, 나는 멈췄다.
손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흔들어도, 아무런 그림자도 움직임도 따라오지 않았다.
거울 앞에 섰을 땐,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거기엔, 내가 없었다.
내가 투명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딱 15분이 걸렸다.
무섭기도 했고, 황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이상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내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면… 오늘 하루, 뭐든 할 수 있는 거잖아?’
한숨처럼 가벼운 미소가 새어 나왔다.
나는 슬리퍼를 벗고 문을 열었다.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하는 하루, 그렇게 시작되었다.
2. 세상이 보이는 법
08:40 AM. 지하철 2호선, 강남역 방향
사람들 틈을 유령처럼 스쳐 지나갔다.
누구도 나를 보지 못했고, 나는 누구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출근길의 지하철은 늘 그렇듯 혼잡했다.
어깨를 움켜쥐고 조용히 울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그녀를 아무도 보지 않았다.
모두들 스마트폰 속 누군가에게 더 집중해 있었다.
나는 그녀 옆에 가만히 앉아봤다.
투명한 나로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눈물이 마음에 닿았다.
‘그 울음, 나도 안다. 이유는 다르지만 그 감정은 같아.’
투명인간이 된 내가 처음으로 마음으로 울었다.
11:12 AM. 예전 회사, 10층 회의실
익숙한 빌딩.
2년간의 출퇴근으로 발바닥이 먼저 기억한 곳.
경비 아저씨와의 인사도 없이, 휙 문을 통과했다.
회의실 안에는 동료들이 앉아 있었다.
그 중엔 나를 괜찮다고 말해줬던 과장님도 있었다.
그의 눈길은 잠시, 내 자리를 바라보다 멈췄다.
“그 친구,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좀 지쳐보였는데…”
그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그 말 한 마디가 눈물보다 따뜻했다.
그날 이후로는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았던 말이었으니까.
‘괜찮니?’
보이지 않는 나는, 오히려 더 많은 걸 보고 있었다.
그동안 외면했던 시선들, 지나쳤던 진심들.
모든 것이 투명한 내 시야 안으로 또렷하게 들어왔다.
3. 나를 떠나지 않는 것들
04:37 PM. 엄마의 식탁
그날은 엄마 생일이었다.
잊지 않았지만, 전화를 걸 용기도 없었다.
난 언제나 표현이 서툴렀고, 엄마는 그런 나를 ‘애늙은이’라 불렀다.
식탁 앞에 혼자 앉은 엄마는 작은 컵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사진이 붙은 벽을 잠시 바라보다 혼잣말처럼 말했다.
“올해는 올까… 오늘은 그냥, 기다려볼까…”
그 말에 마음이 찢어졌다.
나는 조용히 엄마 옆에 앉아, 종이 한 장을 꺼내 메모를 남겼다.
“엄마, 잘 지내고 있어요. 보고 싶어요.”
엄마는 그 메모를 바라보다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엔 놀람보다 위로가 먼저 담겨 있었다.
어쩌면,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닿는 건, 눈으로 보는 것보다 깊다는 걸.
4. 돌아오는 길
09:55 PM. 다시, 거울 앞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 손끝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나의 형체가 서서히 돌아왔다.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고, 돌아가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투명한 하루는 불편했지만, 동시에 가장 진실한 하루였다.
다시 내 방, 내 거울, 내 목소리.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분명히 변해 있었다.
5. 그리고 다음 날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출근길에 한 여자와 마주쳤다.
지하철에서 조용히 울고 있던 그녀였다.
그녀는 그날보다 조금 나아 보였다.
나는 모른 척하며 그녀 옆에 앉았다.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나는 여전히 평범하지만, 더 이상 투명하지 않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그날의 감각이 남아 있다.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때론 가장 강하게 마음을 흔든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