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꼭 따뜻해야 하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밥솥을 연다.
밤새 보온해 둔 밥이 눅눅하게 식어 있을 때면, 내 마음도 따라 조금은 푹 꺼진다.
뜨거운 물로 손을 씻고,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뜨끈한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때, 그제야 “이제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따뜻한 밥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찬밥은 마음까지 차게 만든다.
입안에 퍼지는 온기가 아니라,
그 하루의 태도,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수술 퇴원 후 요즘 동네의 ‘봄인 언니’가 대신 나의 밑반찬을 챙겨준다. 그리고 오늘 친정 엄마가 밑반찬을 가져다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언니도 나처럼 아팠던 시기를 지나왔기에,
내 손이 아직 느린 걸 배려해 먼저 말없이 나서주는 사람이다.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해서, 나는 대신 따뜻한 밥 한 공기로 답하고 싶다.
남편이 오랜만에 친구들 동창 모임에 나간 날,
아들도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인사를 건넨 뒤
나는 혼자 집에 남겨졌다.
그날, 냉장고 안엔 식재료가 가득했지만
어쩐지 나를 위한 식사 따위는 차려 먹고 싶지 않았다.
입맛이 없는 것도, 귀찮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식사라는 행위를 불필요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왜 그럴까.
왜 혼자일 때, 나는 나에게 밥을 안 차려줄까.
왜 뜨거운 국을 끓이는 수고는
늘 누군가가 있어야만 시작될까.
가장 마음이 서운했던 기억은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던 날이었다.
난소에 종양이 생겨 생전 처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다행히 큰 위험은 없었고
며칠 만에 퇴원해 친정 식구들이 잠시 다녀갔다.
몸은 아직 절뚝거렸고,
속은 메스꺼웠으며,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겨우겨우 숨만 쉬는 오후였다.
그런데 저녁 무렵, 시누한테 연락이 왔다 "올케 오늘 퇴원했다면서?" 네 형님!
"오늘 장어구이집 가자" 갈 수 있겠어?!
네 갈 수 있어요. 말은 했지만 다리 쪽에 마취 부작용으로 벌겋게 열꽃이 피고 있어서 뜨거운 장어구이집에 가면 안 될 거 같기도 했다. 그래서 못 갈 거 같아요 다시 번복해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2시간 뒤쯤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나도 옆에 있었는데 "그럼 너만 나와 올케는 나중에 먹음 되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올케 옆에 있어?라고 하니까 남편은 머뭇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내가 옆에 있든 말든 그냥 남편한테 아니 나한테 떳떳하게 말해서 자기 동생도 나 없는 동안 고생했으니까 같이 가도 되지? 이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편은 혼자 말없이 외출 준비를 하고 "다녀올게." 하고 나가려는데
나는? 나는? 밥 누가 차려줘???
하고 묻자,
갈비탕 시켜준다고 하고선 나갔다
순간 서러웠다. 갈비탕을 혼자 먹어야만 하다니
그러나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서러웠다.
그날, 나는 밥을 먹지 않았다.
허기를 채우는 대신, 울음으로 속을 가득 채웠다.
정말로 배가 고픈데도,
그 울컥한 감정 앞에서 아무것도 삼킬 수 없었다.
그 후로 몇 달간
시누이와는 말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보기엔 유치한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나는 그 ‘따뜻하지 못한 한 끼’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며칠 전, 친구가 물었다.
“요즘 제일 그리운 게 뭐야?”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따뜻한 밥이 그리워.”
그건 단지 음식이 아니었다.
그 밥에 담긴 배려, 온기, 존재감 같은 것.
‘내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
‘내가 나를 챙기고 있다’는 실감.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앞으로는 나도 나에게 따뜻한 밥을 챙겨줄 것이라고.
남편이 없는 날, 아이가 나간 날,
식탁이 허전해지는 날에도
나를 위해 국을 끓이고 밥을 데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제는 잘 익은 김치 하나 꺼내고
달걀프라이 하나만 해도 괜찮다.
싱크대 서랍장을 열고 가장 예쁜 그릇을 꺼내어,
내 밥상을 예쁘게 차려보는 연습도 한다.
우리는 가끔, 나 자신을 위한 정성이
누군가를 위한 정성보다 어색하다고 느낀다.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말로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었던 온기를 빼앗아 버리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따뜻한 밥 한 끼가 나를 살게 한다는 걸.
그것은 생존이 아니라,
존엄에 가까운 문제다.
나는 단순히 밥을 먹고 싶은 게 아니다.
나 자신을 허투루 대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그 밥을 짓는다.
식탁 앞에 앉아,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을 마주하며
나는 조용히 다짐한다.
오늘도
내가 나를 따뜻하게 대할 수 있기를.
내 안에 남은 온기를, 내 입으로, 내 마음으로
천천히 옮겨올 수 있기를.
살아보니, ‘밥을 먹는 일’보다
‘어떻게 먹는가’가 더 중요하더라고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자신의 식사에는 늘 맨 마지막 순서를 배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만큼은, 따뜻한 밥을
당신을 위해 차려주세요.
당신도 그럴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