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오래 바라보는 날 6
멍 때림, 사유의 시작
어느 오후,
창밖을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생각이 스쳐가고 있었다는 걸.
바람이 나뭇잎을 가볍게 흔들고,
흐린 햇살이 베란다 창에 내려앉는
그 조용한 장면 속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분주하게 마음속을 걸었다.
나는 그런 시간들을 ‘멍’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건 게으름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향한 가장 순수한 집중이었다.
수술 후 요양 중인 요즘,
나는 매일 창밖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고
억지로 나아가지도 않고
그저 하루에 몇 번, 창을 향해 앉는다.
그렇게 바라보는 세상은
이상하게 더 섬세하고 부드럽다.
달리는 차들도,
고요히 앉은 고양이도,
건물 외벽을 타고 흐르는 빛조차
모두 작은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리고 나도,
그 조용한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예전에는 ‘멍하게 있는 시간’이
쓸모없는 공백처럼 느껴졌다.
식사를 차리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누군가를 챙기고, 또 챙기고,
그런 생활의 단위들 속에선
머무는 시간이 곧 무기력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이
나를 가장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라는 것을.
삶은 언제나 바쁘게만 움직이지 않는다.
중요한 생각들은 늘 고요 속에서 시작된다.
마음의 결이 흐릿하게 열릴 때,
그 틈 사이로 들어오는 감정들과 기억들이 있다.
그것들은 움직임이 아니라 ‘정지’ 속에서 피어난다.
창밖을 보다 보면,
어느 날은 먼 기억이 떠오른다.
어릴 적 마루에 엎드려 한참을 뒹굴던 기억.
엄마는 그런 날이면 꼭 말하곤 했다.
“얘, 멍하니 뭐 하니?”
나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해. 그냥 있는 거야.”
그때의 ‘그냥 있는 나’는
지금의 나와 닮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간.
창밖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마치 내 마음을 창틀 위에 말려두는 일 같다.
불필요한 생각들은 바람에 말라가고,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내 안에 꼭꼭 접어두었던 것들이
서서히 펼쳐진다.
그건 잊고 싶던 기억이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바람이기도 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상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고요한 바라봄 속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날카롭지 않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지루하지 않아?”
나는 속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야.”
나를 향한 시선은
언제나 남의 시선보다 느리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멍한 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진다.
창밖을 바라보며 얻는 건
생산적인 무엇이 아니다.
그건 차라리 나라는 존재에 대한
느리고 조용한 사유다.
멍하니 있던 오후,
문득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뜨거워지고,
슬프지도 않은데 눈가가 젖어드는 그런 순간.
그건 어쩌면 내가
나에게 조금 더 솔직해졌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창밖을 오래 바라본다.
세상이 나를 재촉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생각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고,
내 마음의 조각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
그저 창문 앞에 조용히 앉아,
내 안의 말들을 정리해 나간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는 나로 가장 깊이 존재하고 있다.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은
내 삶의 사유가 시작되는 자리다.
거기엔 어떤 교훈도 없고,
눈에 보이는 변화도 없지만
나는 그런 시간 속에서
조금씩 나를 되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