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평범한 철학 – 주부의 사유일기

마트에서의 작고 큰 선택들 7

by 마음쉘터



돈, 소비, 나의 기준
마트에 들어선다.
쇼핑카트 바퀴가 말끔한 타일 바닥 위를 부드럽게 굴러간다.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오후,
하지만 나는 오늘도 작고 큰 선택들을 반복한다.

세일표가 붙은 진열대 앞에서
내 손은 익숙하게 가격표를 먼저 본다.
“이건 3천 원, 저건 4천5백 원…”
수치를 비교하고, 용량을 계산하고,
혼잣말처럼 속으로 말한다.
“이 정도면 괜찮지.”

하지만 그 ‘괜찮음’에는 수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
내가 나를 위해 허용할 수 있는 소비의 기준,
오늘 내 기분,
이번 달 지출 흐름,
그리고 아주 깊은 곳엔
‘나 같은 사람이 이걸 사도 될까?’라는
묘한 죄책감도 숨어 있다.

어느 날은 딸기가 예뻐 보여 잠시 멈춰 섰다.
촉촉하고 빨간 딸기 한 팩.
그런데 가격이 만 원을 넘는다.
들었다가,
살짝 흔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지금은 회복 중이잖아.
기분전환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도 만 원은 좀…’
‘남편이 먹을 것도 아닌데 굳이?’

놀랍도록 자동화된 이 생각의 흐름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나를 위한 소비 앞에서
잠시 주춤한다.

마트라는 공간은 현실이다.
정확한 숫자와 유통기한, 브랜드 가치와 실속이 맞부딪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매번
‘필요와 욕망’ 사이의 줄타기를 한다.

그리고 그 줄타기의 중심에서
나는 묻는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이걸 선택하고 있는가?”

때로는 가장 싼 것을 고르며 스스로를 실용적이라 여기고,
어느 날은 조금 비싸도 '괜찮은 나'가 되고 싶어
남몰래 고급스러운 요거트를 집어 들기도 한다.
그런 날은 꼭 냉장고 속에서
누군가가 그걸 발견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일까.
마치 그건 내 ‘사치’처럼 보일까 봐.

결혼 초에는 마트가 재미있었다.
무엇이든 처음이었고,
필요한 걸 채운다는 게 뿌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마트는 점점 전쟁터가 되었다.
가성비와 실용성,
가족의 입맛과 건강,
지출 총액과 이번 주의 우선순위 사이에서
나는 늘 ‘계산기 같은 엄마’가 되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주머니에 넣어둔 장보기 목록에서
‘내 이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의 요구, 남편의 취향,
냉장고에 남은 반찬과 특가 행사표.
그 모든 것에는 기준이 있었지만
‘내가 지금 뭘 먹고 싶은지’
‘내가 뭘 가지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은
자꾸만 지워졌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조금은 나를 위해서도 담아보고 싶다.
굳이 비싼 게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적어도,
‘이건 내가 좋아하는 맛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소비를 내 삶 안에 두고 싶다.

가령
내가 좋아하는 크림치즈,
조용히 마실 한 병짜리 탄산수,
아무도 건드리지 않을 나만의 젤리 한 봉지.

이 모든 것들이
마트에서 내가 나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작고 사소하지만
그 작은 선택들이
내 자존감의 물줄기를 조금씩 되돌린다.

마트에서의 소비는 단지 물건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그건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작은 손짓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오늘은 난 수박을 집었다.(예전에 비싸서 집었다 놨다를 반복했던 딸기는 제철이 끝났서 없다고 한다) 배달을 시키고 집에 돌아와
수박을 썰어
예쁜 그릇에 담아놓고
창밖을 보며 천천히 먹었다.

누구를 위한 게 아니었다.
그건 오롯이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맴도는 동안
나는 내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고 느꼈다.

“우리는 매일 마트에서
삶의 기준을 고르고,
자존감을 조금씩 담아 온다.”

소비는 나의 의지다.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인가 보다는
그 안에 담긴 존중과 애정의 방향이 더 중요하다.

이제 나는 안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를 때마다
나는, 나를 조금씩
더 사랑하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