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키고 싶은 하루의 의식 8
습관, 나만의 리쥬얼
하루의 시작이란 늘 정해진
시간에 맞춰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뜨고, 누군가는 점심을 지나서야 하루가 열린다.
지금의 나는 전자도 후자도 아니다.
수술을 마치고 요양 중인
이 시기의 나는,
정확한 기상 시각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시간을 통제할 수 없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흐름을 정하는 일이었다.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감정의 방향,
나만의 박자, 일상의 구심점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하루의 의식’이다. 예전에는 이런 말조차 나에게 사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땐 하루가
아침 등교 시간에 맞춰서 급하게 열렸다. 교복 넥타이 스타킹, 체육복, 준비물... 주부의 하루는 늘 타인의 시간에
종속된 시작이었다.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오늘 어떤 기분인지는 늘 후순위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여백’이 생겼다.
정해진 출근이 없고,
아이들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 조용한 시간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고요 속에서
나만의 질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난 뒤
나는 가장 먼저 창문을 연다.
겨울에도, 초여름의 뿌연 아침에도.
바깥공기의 결이 얼굴을 스치면,
마치 내 안의 먼지들도
조금은 날아가는 기분이다.
이어지는 첫 동작은 커피머신의 버튼을 누르는 일.
특별한 의미는 없다. (님편 출근길에 가져갈 커피)
다만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오늘을 시작한다는 안정감,
그것이 내게는 필요했다.
커피가 내려오는 동안 나는 식탁을 정리하고, 식물에 물을 준다.
딱 그 정도의 리듬이,
내가 나를 잃지 않게 도와준다.
과하지 않은 통제,
억지스러운 생산성의 강박 없이,
오늘 하루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내가 내 삶을 단단히 잡고 있다는 신호.
습관이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요가를 매일 하고
책을 세 권 읽는 것만이
‘나를 위한 시간’은 아니다.
때로는 조용히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시는 그 5초의 동작이
하루의 결을 다르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내 하루를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예전에는 그걸 남의 시선으로
확인받고 싶어 했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말,
너 참 부지런하구나,
어쩜 그렇게 다 해내니 같은 말들에
매달렸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구도 보지 않는 시간에,
아무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나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작은 루틴들이 무너졌을 때
나는 가장 먼저 내 안의 불안과
마주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자책이 아니라,
방향 없이 하루를 흘려보냈다는 허무함.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의식을 지킨다.
꼭 해야 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로 있기 위해.
대단한 변화는 없다.
누가 봐도 별것 아닌 루틴들이다.
밥을 짓고, 약을 챙기고,
간단한 일기를 쓴다.
저녁이 되면 스마트폰 속
오늘의 사진 하나를 골라
폴더에 저장한다.
그날의 하늘이든, 반찬이든,
내가 앉았던 의자든.
그렇게 하루를 닫는 습관까지 이어지면, 그제야 나는 오늘도 나를 살았다고 느낀다.
문득, 어떤 날은 그 루틴이 전혀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다.
아프거나, 누군가의 방문이 있었거나,
또는 그냥 무기력해서.
그런 날은 그런대로 넘긴다.
억지로 삶을 조이는 대신,
다음 날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나만의 자리를 마련해 두는 것.
하루의 의식이란, 완벽한 수행이 아니라 나와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잊지 않는 일. 그 약속들이 쌓여 내 삶의 모양이 된다. 오래된 가방 속에서
나만 아는 입구를 찾듯,
그 의식들은 나를 내 삶으로 데려다주는 포탈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말 걸기 위한 도구.
그래서 나는 오늘도 창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작게 중얼거린다.
‘괜찮아, 오늘도 잘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