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자격

우리에게 헤매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by 마음쉘터
밀리의 서제에서 읽은 『어른에게도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다』 책표지


『어른에게도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다』를 읽고
어떤 날은 하루가 구겨진 종이처럼 시작된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눈을 뜨고, 해는 이미 거실 끝까지 와 있다.
별일이 없는데도 모든 일이 불편하다. 커피 맛도, 사람도, 나 자신도.

그럴 때면 문득 든 생각 하나가 내 마음의 결을 파고든다.
“이런 내가 너무 한심한 건 아닐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세상도 한두 번 겪은 게 아닌데,
왜 나는 아직도 이렇게 쉽게 휘청이는 걸까.
왜 매번 똑같은 질문 앞에서, 똑같은 우울에 빠지는 걸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책 한 권을 펼쳤다.
스기야마 다카시의 『어른에게도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다』.
책의 첫 장부터 마음이 멈칫했다.
그는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혼란과 불안으로 고통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이에 대해 심리학자인 저자 스기야마 다카시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어른에게도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다』, 큰 숲, 2024)
그러니까, 헤매는 건 당연한 일이란다.
불안도, 혼란도, 나약함도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감정이라고.
그 말이 낯설게 위로가 되었다.

요즘은 ‘방황’이란 말 자체를 허락받기 어렵다.
누군가는 ‘그럴 시간에 뭔가를 이루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웃는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조급해지고,
마음은 다그침 속에 무뎌져간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되묻는다.
“헤매도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나요?”
그 물음 앞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방황할 수 있었던 시간은
누군가 그 시간을 허락해 줬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나 혼자 조심스레 허락해 준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나는 그 안에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불편하며,
어떨 때 숨이 막히는지 알게 되었다.

어쩌면 방황이란,
외부를 떠도는 시간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로 향하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해 내는 과정 말이다.

그러니,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 있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살아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방황이 끝나는 날,
우리는 어른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인용 출처

스기야마 다카시, 『어른에게도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다』, 황소연 옮김, 큰 숲,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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