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이라는 감정의 온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당신의 체온은 몇 도쯤인가요?”

by 마음쉘터


요즘 자꾸 늦게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해야 할 일을 떠올려보지만
목록은 머릿속에만 있고, 몸은 소파에 붙어버린다.
“해야지”라는 말만 떠다니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하루가 또 지나간다.

가장 서글픈 건,
그 모든 걸 알면서도 계속 이러고 있다는 사실.
마음은 움직이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무기력.
사람들은 이 단어를 종종 게으름과 구분하지 못한다.
“그냥 마음먹으면 되잖아.”
“요즘 다 그래.”
그 말들은 얼핏 위로 같지만, 사실은 차갑다.

그러다 어느 날, 『무기력 사회』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우리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그저 자기 관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 삶에서 의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 요한 하리, 『무기력 사회』 (어크로스, 2023)

아.
정확했다.
내가 지친 건 일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왜’ 하는지를 잃어버린 채
‘해야 하니까’만 남은 삶이
내 안의 체온을 서서히 빼앗고 있었던 것이다.

무기력함은 차가운 감정이다.
뜨거운 분노가 삶을 뚫고 나오는 것이라면,
무기력은 고요한 냉기처럼 스며든다.
조용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마음을 얼린다.

프리드먼은 『마음의 병에 걸린 시대』에서
지금 우리가 겪는 정서적 탈진을
“감정적 과부하”라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는 지속적인 연결 속에서
감정을 처리할 시간도 없이
다음 반응을 요구받는다.
결국 사람들은 감정을 꺼버린다.
무기력은 그 부작용이다.”
— 에드윈 허버트 프리드먼, 『마음의 병에 걸린 시대』 (동연, 2021)

그러니까, 무기력하다는 건
감정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방치된 감정이 굳어버린 상태일지도 모른다.
뜨거운 감정을 반복적으로 외면한 끝에
서서히 체온이 식어버린, 그런 상태.

우리는 어쩌면
조금만 덜 연결되어도 괜찮고,
조금은 미뤄도 되는 하루를
스스로에게 허락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무기력한 나날 속에서도
감정의 ‘온도’를 측정해 보면 좋겠다.
나는 오늘 따뜻했는가.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았는가.
어디에서 내 마음이 얼어붙었는가.
그리고 아주 작게라도,
어디에서 따뜻해졌는가.

그렇게 감정의 체온을 조금씩 회복하는 것.
그것이 무기력으로부터 회복되는 시작이 아닐까.

오늘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도 괜찮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온도를 되찾는 중이니까.



인용 출처

요한 하리, 『무기력 사회』, 이순희 옮김, 어크로스, 2023.

에드윈 허버트 프리드먼, 『마음의 병에 걸린 시대』, 이서현 옮김, 동연,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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