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by 위시러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건 아닐까?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나는 왜 이럴까. 왜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스스로를 괴롭힐까. 누군가가 내 결점을 알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걱정하고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두려워하고 타인이 내 의견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왜 그토록 알려고 했을까.


살이 조금만 쪄도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여 입고 싶은 옷을 마음대로 입지 못했다. 관종이라고 생각할까 봐 SNS에 올리지 못한 사진과 영상들이 많다. 발표나 스피치에 영 자신이 없었다. 한 마디로 자신감 없는 인생을 살았다. 이제 주변의 평가에 연연하며 사는 걸 그만두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전전긍긍하는 삶을 내려놓고 싶다. 나는 왜 이리도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민감한가. 예민한 성향이다 보니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더 민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다. 다만 타인의 시선을 어느 정도 신경 쓰며 사는지 그 차이가 있을 뿐이다.


왜 그토록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려고 했을까?

왜 나는 타인의 눈으로 스스로를 평가했을까?

타인의 평가가 두려웠던 적이 언제였는가?

나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심리 관련 책들을 찾아 읽으며 내면을 탐구해 갔다. 그러면서 꼭꼭 숨기고 감춰뒀던 '다양한 욕망'이 보였다. 나에게 이런 욕망들이 있었다고? 놀라웠다. 여태 나를 잘 안다고 착각해 왔던 건가. 내면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다.


모두에게 착하고 좋은 사람이고픈 욕망.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고픈 욕망. 웃기고 싶은 욕망. 댄스 욕망(?). 발표나 강연 등 스피치를 잘하고 싶은 욕망. 내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받고 싶은 욕망. 남들이 무시하지 못할 수준으로 크게 성공하고픈 욕망.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 이 들끓는 욕망들이 나를 곤란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놀라운 건 '스피치 욕망'이다.

발표는 싫어. 자기소개도 싫어. 토론이나 강연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소극적이던 학창 시절부터 발표 같은 일들을 극도로 싫어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을 만큼. 지금 생각해 보면 발표를 싫어했던 건지 모자라고 부족했던 나 자신을 혐오했던 건지 모르겠다. 만족스럽지 못한 나를 보며 우울감에 휩싸인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주목을 받는 일은 괜찮다. 발표나 스피치 시간이 두려운 것이다. 왜일까. 아마도 경험 부족, 자신감 부족,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실수할까 봐 두렵고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가 싫었다.


그렇다. 나를 불안의 굴레로 밀어 넣는 요소 중 하나는 '완벽주의' 성향이다. 완벽주의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못한다. 스피치를 하다가 실수하는 상황을 상상할 때마다 수치심이 몰려왔다. 그들의 시선과 평가를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당황하지 않고 스피치를 이어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비난의 말, 비판의 목소리에 대한 공포도 무시할 수 없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누구나 한계가 있으며 누구나 완벽할 수 없다. 나는 왜 자신에게 그토록 가혹했을까? 나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이 감정을 두려워했기에 많은 일에서 스스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실수에는 관대하면서 내 실수에는 왜 관대하지 못하지? 그랬던 내가 3개의 독서모임을 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도전을 짓누르는 또 하나는 '자기 의심'이다.

나는 자기 신뢰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내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했다. 열등감에 시달렸다. 장점이 아니라 단점에 초점이 맞춰진 렌즈로 나를 바라봤다.


서투르면 좀 어때서.

실패하면 좀 어때서.

잘 해내지 못하면 좀 어때서.


결점을 감추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지난날들이 후회가 된다. 타인의 시선에 지나칠 정도로 얽매이는 삶은 스스로를 지치고 피곤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동안은.


메타인지가 잘 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안의 빛을 발견해 내고 주변의 평가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하루하루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간다. 누군가의 장점을 보고도 위축되지 않으며 자신의 단점을 보고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진정한 나만의 가치를 찾는다.


지금 나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여정을 걷고 있다. 자기 비난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려고 한다. 외부의 인정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내면의 발전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진정한 '나다움'을 찾을 때까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위시러브'는 나야 나, 나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