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벌이로 버티기엔 너무 빠른 세상.

by 위시러브


독박육아가 힘들까, 외벌이가 힘들까.

결혼하고 긴 시간 동안 나는 거의 독박육아로 살아왔다. 남편은 직업 특성상 야근과 출장이 많았고, 육아와 살림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일하는 시간이 많은 만큼 더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퇴근 후나 휴일에는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거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해했고, 이해하려 애썼고, 그러다 미워졌다. 미워하면서도 다시 이해했다. 그 감정들은 아이들을 키우는 하루하루 속에서 조용히 쌓여갔다.


남편은 맞벌이를 원했다. 나는 아이들이 조금 더 클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아이를 타인에게 맡기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타인에게 맡기는 일은 내게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나의 육아 신념도 한몫했다. 아이가 어릴 때만큼은 엄마가 곁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 돈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던 가치였다. 힘들 걸 알면서도, 몇 년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늘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온 나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아이가 어디가 아프진 않을지, 다치진 않을지, 그 생각들이 일을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아이 곁에 머무는 쪽을 선택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고단한 날들이 이어졌지만, 그때의 나는 그 선택 말고는 할 수가 없었다.


둘째가 돌이 되었을 무렵, 나는 다시 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이 잠든 밤, 조용히 책을 읽고 몇 줄을 쓰는 시간. 그렇게 시작한 인스타그램과 글쓰기가 어느새 나를 다시 나 자신으로 불러내고 있었다. 2021년 가을,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그 이후로 나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나의 방향을 걷고 있다.


하지만 꿈을 향해 걷는 내 시간은 남편의 눈에 늘 불확실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처럼 보였을 것이다. 맞벌이를 통해 당장의 안정을 택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선택 역시 책임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 과정에서 서운했고, 미웠고, 화가 났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의 외로움은 생각보다 컸다. 확신과 불안 사이를 오가는 긴 터널 같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쳤고, 그만큼 다툼도 잦아졌다. 아이들 앞에서 말다툼을 하고 나면, 가장 먼저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싸움은 세상에서 가장 큰 공포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날을 울었다. 육아 신념도, 꿈도, 모두 내려놓고 돈을 벌면 모든 게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쪽을 선택했다. 글도, 삶도, 인생도 하루아침에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싶었다. 이 시간을 마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절실했으니까.


그러면서도 매달 카드값을 확인하는 순간마다 불안해졌다. 이게 맞나?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집 대출, 아이들 학원비, 병원비, 보험, 생활비, 재산세, 자동차세. 거기에 부모님 생신과 명절,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 각종 경조사까지.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 앞에서 우리는 늘 돈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짊어진 무게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럴수록 내가 돈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동시에 꿈을 내려놓을 수 없는 나 자신을 나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느린 선택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정직한 선택이었다. 이 세상이 너무 빠르다고 느껴질수록, 나는 속도를 올리기보다 방향을 다시 확인하며 걷고 싶어졌다.


그래서 외벌이로 짊어지는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안다. 동시에 독박육아와 살림, 꿈과 생계 사이에서 혼자 여러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도 안다. 그래서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외벌이와 맞벌이 중 무엇이 더 힘드냐는 질문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어떤 선택이든, 지금의 세상은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요구한다.


이 분노는 남편을 향한 게 아니다.

외벌이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에게,

속도를 늦출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이 사회를 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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