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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의 아픔도 치유가 될까.

내 인생의 가장 조급하고 불안했던 시기.

by 위시러브


꺼내기 힘든 이야기 중에 하나를 꺼내볼까 한다.

깊숙이 묻어두었던 상처를 꺼내어 보듬고 치유하기 위해서.


시간이 많이 지나서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눈물이 차오른다. 더 이상 내 아픔을 방치해두면 안 되겠다 싶었다.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과 만나는 과정을 거치면서 회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8년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태몽을 꿨다.

꿈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생생해서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이 날 정도다. 유리 벽으로 만들어진 집 안에 내가 있었고, 밖에는 뿔 달린 사슴 한 마리가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너무 놀랐다. 반짝반짝 빛나는 동그랗고 큰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참 예쁜 사슴이었다.


얼마 후 임신테스트기 결과 두 줄이 나왔고, 산부인과에 가 보니 임신이 맞다고 했다. 그러다 며칠 후에 또 한 번 사슴이 잠깐 등장했는데, 폴짝폴짝 뛰어오더니 나를 지나쳐 갔다. 어디로 가는 거지?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던 것도 같으나 당시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며칠 후 산부인과에 가는 날, 아주 불길한 꿈을 꾸다 잠에서 깼다. 굉장히 높은 절벽 위에서 내가 아래로 맥없이 떨어지는 꿈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결국 그날 산부인과에서 유산이 진행 중이라는 말을 듣고 말았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그때 집에 돌아가면서 처음으로 기이한 걸 경험했다. 온 세상이 깜깜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시간은 대낮이었지만 나에겐 그 어떤 밤보다 어두컴컴하게 보이는 날이었다.


알다시피 유산이란 태아가 생존이 가능한 시기 이전에 임신이 종결되는 것을 말한다. 내 경우는 임신 6주 정도가 되어가던 시점에 유산을 한 것. 짧은 주수였지만 내가 받은 충격과 상처는 너무 컸다. 유산이라니. 얼마나 원했던 둘째인데. 얼마나 조심했는데. 너무 고통스러웠다. 한동안 매일 밤 울었다. 꿈에서 마주친 사슴의 맑고 예쁜 눈이 자꾸 떠오르면서 더 가슴이 아파왔다.


지독히도 힘든 시간들이었다. 소중한 걸 잃은 느낌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를 위로해주던 사람들이 더 많았다. 고마웠다.


내가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딸이었다. 당시 3살이었던 우리 딸이 있었기에 그 힘든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다. 유리멘탈인 나는 우리 딸이 없었더라면 더 크게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삶이 어둡기만 하지 않다는 걸 존재 자체만으로도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딸 덕분에 하루하루 견딜 수 있었다.


정상 분만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경우가 바로 유산 후의 산후조리라고 한다. 하지만 유산 후에는 예쁜 아기 대신에 정신적 충격을 얻기 때문에 혹은 출산을 한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대부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이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간다고 한다.


유산은 출산 과정과 흡사하므로 출산 못지않게 정신적, 신체적 충격을 준다. 이 때문에 제대로 몸조리를 하지 않으면 우울감, 산후풍 및 여성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충분한 몸조리로 회복을 해야 한다.


이걸 알았기 때문에 처음 한두 달은 조심하고 휴식을 취하며 지냈지만, 그래도 부족했었나 보다. 아무래도 3살 딸을 케어하면서 정신적으로는 위안을 받으면서도 육체적으로는 마냥 쉴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유산 이후 몇 개월 간 몸이 많이 아팠다. 특히 배가. 몸이 비틀어질 정도로.


게다가 아픔이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둘째에 대한 조급함까지 더해졌다. 둘째를 원하는 마음이 너무 강력하다 보니 혼자 몰래 임테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자그마한 증상에도 혹시 임신한 거 아닐까 의심해보고. 기대하고 좌절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둘째'나 '유산'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해도 가슴이 덜컹했다. 주변에서도 둘째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잘 모르는 어른들까지도. 답답했다. 지금 누구보다도 둘째를 원하는 사람은 바로 나인데 말이다.


극도로 예민했던 나에게 지나친 간섭은 나를 더 고통으로 몰아붙였다.








그 후로 오랫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원래 힘든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괜히 내 건강을 의심해 보기도 하고, 태몽이 떠오를 때마다 혼자 울며 우울해했다. 사업 실패를 경험했고,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초절정에 달했다.


점점 지쳐갔다. 무기력. 좌절. 혼란. 우울. 분노. 두려움. 걱정 등. 이런 감정들이 나를 덮쳤다. 내 인생에서 가장 조급하고 불안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나.

지금 생각해보니 많이 안쓰럽다.


그래도 남편은 나를 많이 이해해주었다. 정말 큰 힘이 되었고 고마웠다. 사실 유산했을 당시에만 해도 미웠다. 왜 나와 같이 아파하지 않지? 왜 나 혼자만 울고 있지?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는 걸 물론 알고 있다.

그도 힘들었겠지. 아팠겠지.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단지, 유산되고 아파서 괴로워하거나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나를 보는 게 더 힘들고 괴로웠던 게 아닐까. 내 앞에서 자신만이라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을 것이다.


둘째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힘들었지만,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간절했으니까.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마음을 편안하게 먹자. 조급해하지 말자.

희망을 갖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지금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고 살자.'


기도도 많이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어느덧 유산이 된 지 3년이 흐른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너네 무슨 소식 없니?"

"아니 없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엄마가 무슨 꿈을 하나 꿨는데, 그게 왠지 네 꿈인 것 같아서 말이야."

"정말? 무슨 꿈인데?"

"희고 큰 고래 두 마리가 우리를 막 쫓아오더라고. 그중에 한 마리를 네가 손으로 만졌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태몽이 맞다는 직감이 들었다. 곧 둘째가 찾아오는 걸까? 얼마나 좋으면 꿈 이야기에 이렇게 기쁘고 설레지?


그때부터는 설레는 기다림이었다. 마음도 자연스레 더 편안했다. 엄마의 꿈이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다.


정말로 얼마 후 둘째가 찾아왔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축복이. 내가 둘째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를 알고 있었던 지인들은 소식을 듣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6살 터울의 남매인 사랑스러운 두 아이.

내 인생의 큰 축복이다. 내 품으로 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두 아이를 낳은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많이 나아졌다고 믿었다.

물론 두 아이 덕분에 많이 치유가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때를 떠올리니까 당시의 아픔이 그대로 느껴지면서 치유가 덜 됐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지금의 나는 괜찮지만, 그때의 나는 괜찮지 않았다는 걸.


이 글을 쓰는 게 힘들었다. 3주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 이야기를 계속 쓸 수 있을까? 처음에는 걱정도 됐다. 그래서 초반에는 마치 유산된 게 바로 어제 일인 것처럼 펑펑 울며 괴로워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아 진정하고 다시 와서 쓰기를 반복했다.


많이 힘들었나 보다.

유산됐던 당시의 내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일까. 유산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은 적이 없어서일까.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그저 힘들었다 정도로만 이야기한 것 같다. 그때의 기억과 마주하면 내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치유의 글쓰기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한 줄도 쓰기 어려웠는데, 글을 쓰면서 계속 그때의 감정과 마주하면서 점점 괜찮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점점 차분하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나를.


치유가 필요한 아픔의 조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앞으로도 또 어떤 새로운 시련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그렇기에 글쓰기를 통해 인생의 아픔들과 직면하며 내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을 계속 가져야겠다. 내가 상처받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누가 내 아픔을 보듬을 것인가. 물론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 책을 통해서도 위로를 받겠지만, 글로 쓰면서 내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보듬어주는 일도 꼭 필요할 것 같다. 꼭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이 아니더라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쉴 새 없이 파도에 부딪쳐도 꿋꿋하게 버티는 바위를 닮으라. 바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며 마침내 그 주위의 격렬한 파도는 잠잠해지는 것이다. 오히려 '내게 일어났던 일들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고 현재에 의해 흔들리지 않으며, 미래에 의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말하라."


힘든 상황이 생길 때 흔들리거나 불행에 빠지지 말고, 이를 슬기롭게 이겨 내는 것이 바로 행복의 지름길이란 걸 알려준다.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싶다.

유리벽 뒤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던 너와.


누구의 잘못도 아니란 걸 알지만,

그래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고맙다고.

평생 잊지 않을 거라고.


다만 이제까지와는 다르길 바란다.


그저,

제대로 작별 인사를 나눈 후에는

너의 맑고 예쁜 눈을 떠올렸을 때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이 아니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그런 애틋한 기억이길.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단지 그 상처의 크기나 깊이가 다를 뿐이다.

누군가는 웃으며 금방 넘길 수도 있을 테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아프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아픈 마음을 치유하려면 기억을 억누르기보다는 힘들더라도 그 기억과 직면하고 상처를 돌보는 일이 필요하다. 두려운 기억을 피하지 않을 용기가.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 시련에서 해방되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 믿는다.


결국 용감하게 시련을 버텨낸 나에게

'둘째'라는 큰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는가.


그 시련이 나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었고, 조급하고 괴롭고 불안했던 시간들을 안겨주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먹는 게 중요하다는 것.

조급함은 오히려 어떤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

인내하고 견뎌내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이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


시련으로부터 벗어나고 극복하려는 의지가 나를 엄청나게 강하게 만들어준 걸까.


둘째가 찾아옴과 동시에 진정한 꿈도 찾았다.

오래전부터 갈망하긴 했지만 도전할 용기가 없었던 그 꿈을. 마치 나에게 어떤 새로운 힘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픔의 시간들을 버텨내면서 내가 더 단단해지고 강해진 것이다.


그 시간들이 결국 내가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인내와 희망을 갖고 버텨내면서 나는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특히,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선물처럼 건강한 아기가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탐색할 계기를 제공한다. 당신이 미처 몰랐던 자신의 본모습과 마음 한구석에 뿌리내린 오래된 상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내 마음이 아픈 원인을 알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더 밝은 모습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잘 지내게 된다."

_윤경희, <새로운 나를 만나는 치유하는 글쓰기>.



"희망을 기다리면서 그 희망의 고지를 믿고 있을 때는 이 세상 어느 것도 그 믿음을 허물지 못해. 그때 그 시간을 견뎌냈던 것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지."

_양순자, <어른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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