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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러브 Oct 07. 2021

1979년 8월 11일, 충격적인 그 밤.

"아무리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1979년 8월 11일.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충격적인 그 밤, 21살의 여성 노동자 김경숙이 목숨을 잃었다.


 가발•봉제업체인 YH무역의 여성 노동자 187명.

그들은 회사 측의 일방적인 폐업조치 및 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대부분은 고향을 떠나 상경한 10-20대 여성 노동자들이다. 무더운 여름, 기숙사의 물과 전기 공급이 끊기자 농성장을 옮기기로 한다. 1979년 8월 9일, 고요한 9시. 골목 여기저기 숨어 있던 187명의 여성들이 한꺼번에 나와 마포에 있는 제1야당 신민당 건물로 들어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았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찾아간 그곳, 신민당사 4층.

그들은 머리띠를 꺼내 두른 뒤 준비해 온 플래카드를 농성장 앞 벽에 붙였다. 그 플래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를 나가라면 어디로 나가란 말이야", "배고파 못 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 신민당에 있던 당시 김영삼 총재는 이들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이들의 투쟁을 지지한다.


 1979년 8월 11일 새벽 두 시.

신민당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경찰들. 일명 '101호' 작전이 시작된다. 경찰 2명이 양쪽에서 1명씩 체포하는 작전이다. 흰 장갑을 낀 사복 입은 5-60명의 남성들을 포함해, 1,000여 명 이상의 경찰들이 당사 문과 벽을 부수며 여기저기서 들이닥쳤다. "쳐들어온다!!!" 밤샘 대기 중이던 기자들이 소리쳤다. 그곳에는 국회의원들과 김영삼 총재도 있었다. 곤봉으로 때리며 국회의원, 당 간부, 기자들을 나오게 하고, 그 힘없는 여공들을 곤봉으로 가격하며 진압한다. 무차별 난타에 여공들은 기절했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곤봉과 군홧발에 찍히고 밟혀 피투성이가 된 여성 노동자들을 끌어내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김경숙이 추락했다. 타박상을 입은 채 당사 뒤편 지하실 입구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녀를 발견하고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


 경찰은 김경숙의 사망 경위를 강제 해산 직전에 스스로 동맥을 끊어 투신자살한 것으로 몰아간다. 다른 여공들은 경찰 조사 후 강제 귀향을 당했다. 그렇게 의혹을 남긴 채 김경숙의 죽음은 묻혔다. 하지만 김경숙의 죽음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다. 김영삼 총재는 박정희 정권과 정면 대결을 선언하고, 박정희의 하야를 강력히 요구했다. 결국 김영삼 총재는 의원직 제명을 당하지만, "아무리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고 외쳤다.


 얼마 후 부산에서 대학생 하나가 유인물을 나눠주기 시작한다. "유신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는 대학생들이 부산 시내로 진출하고, 시민들까지 나서며 더욱 격렬해지는 시위. 그렇게 부마 민주항쟁이 시작된다. 유신 체제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크게 고조되며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한 사태가 되자, 박정희는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심각한 의견 대립 끝에,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하며 유신정권은 막을 내렸다.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1979년에 벌어진 야당 당사 내 국가 폭력 사건.

당시 사진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10-20대 여성들 아닌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들은 그저 가족을 위해 꽃다운 시간들을 공장에 바친 가난한 누이들이었다. 학교 대신 공장을 가야 했던 안타까운 청춘들이다. 모두를 분노하게 한 충격적인 그 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김경숙 열사의 죽음은 29년 만에 진실이 밝혀진다.

2008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당시의 부검 기록을 재검토했다. "추락 사망한 시점이 진압 개시 이후였고, 동맥 절단 흔적이 없었으며, 손등에 쇠파이프로 가격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처가 있다. 후두 정부에서는 모서리 진 물체로 가격 당한 치명적인 상처가 있다."라고 발표하여 스스로 동맥을 끊어 투신자살한 것이 아니라 진압과정의 폭력으로 사망하였음이 밝혀졌다.


 그녀의 죽음은 1970년대 당시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아픔을 상징한다. 그리고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김영삼 의원 제명 파동, 부마 민주항쟁, 10.26 사태로 이어져 박정희 정권 몰락까지. 18년 군사독재를 종식하고 민주화의 봄을 부르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만약 그때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부마항쟁 진압에 있어서 5.18 민주화 운동보다 더 큰 인명 피해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힘없는 여공들의 눈물과 김경숙 열사의 죽음.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그날을 기억해야 한다.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회를 꿈꾸며.





"그들의 삶이 고되고 모든 희망이 다 성취된 것은 아닐지 몰라도 동물들은 자기네가 여타 농장의 동물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배를 주린다면 그건 인간 독재자들을 먹여 살리느라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고달프게 일한다 해도 그 노동은 최소한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두 발로 걷는 동물은 없었다. 어느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주인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했다."

_조지 오웰, <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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