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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동생에게 애틋했던 그때.

by 위시러브


두 살 터울의 남동생과 나는 그다지 의초로운 관계는 아니었다. 사이좋은 날들도 물론 있었지만, 싸우는 날이 더 많았다. 서로 보고 싶은 만화가 다를 땐 한바탕 난리가 난다. 이를테면 나는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나 <카드캡터 체리>를 보고 싶은데, 동생은 <슈퍼 그랑죠>, <달려라 부메랑> 같은 걸 보길 원했다. 그러다 <피구왕 통키>나 <꾸러기 수비대>처럼 같이 볼 수 있는 만화가 나오면 평화롭기 그지없다. 또 나중엔 컴퓨터를 서로 하겠다고 다투기도 했다가, 같은 게임을 같이 할 땐 잠시나마 평화로워졌다가.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형제자매가 있으면 어릴 때부터 먹는 거나 노는 걸로 서로 갈등을 겪으며 상대방을 이해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조금씩 배우나 보다.


하도 까불어서 혼낸 날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다. 좀 더 누나답게 행동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땐 나도 마냥 어린아이였다. 그래도 유년 시절 동안 다양한 위기를 함께 겪어내며 서로를 많이 의지했고, 힘이 되었다. '전우애' 같은 게 생겼달까.


저녁때 아빠의 술 심부름을 하러 동네 슈퍼에 다녀올 때면 늘 함께 했고, 사이가 좋았다. 서로 업어주기도 할 만큼.


귀여웠던, 내 동생 어린 시절.

살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 있다. 동생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던 날이다.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


내가 10살, 동생이 8살 무렵이다.

각자 친구와 동네 어딘가 골목에서 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개구쟁이였던 내 동생은 어릴 때 겁이 없었고, 어느 오래된 빈집 지붕 위에 올라간 것이다. 그. 런. 데. 그 낡은 지붕이 무너져 내리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문제는, 그냥 아래로 추락하기만 한 게 아니라 떨어지면서 반대편 벽에 얼굴을 세게 부딪히고 떨어졌다는 거다. 그러면서 입과 턱 사이가 크게 찢어졌고 피가 철철 났다. 그때 우리 엄마는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동생 친구의 엄마가 동생을 안고 달리고, 차를 태워서 병원까지 급히 가주셨다고 한다. 그 친구는 동생과 아직도 절친이다. 동생 친구의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소식을 들은 나는, 그때 당시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 3 정류장이나 되는 거리를 미친 듯이 질주했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동생이 너무 걱정돼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더니 중간에 구토가 나오는 바람에 잠시 멈춰 섰다. 살면서 뛰다가 구토가 나오는 경험은 그때가 유일했을 거다. 그리고 계속 달렸다. 그땐 그 3 정류장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그래도, 동생이 제발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앞만 보고 달렸다.


겨우 도착한 응급실.

엄마와 아빠가 보인다. 동생은 수술을 마치고 잠들어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동생의 말도 전해줬다.


"누나는 어딨어? 누나 보고 싶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뒤에서 몰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놀랐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누구도 나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동생을 잘 챙겼어야 했는데. 다쳤을 때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좀 더 빨리 병원에 왔었어야 했는데. 자책감과 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결국 스무 바늘 이상을 꿰매는 수술을 받은 동생의 얼굴에는 작은 흉터가 남았다. 그 흉터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 왔다. 동생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너무나도 속상했던 날이다. 아마 그날이 우리 남매가 살면서 서로에게 가장 애틋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날은 우리 엄마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다.

누나인 나도 가슴이 그토록 아픈데, 엄마는 얼마나 놀라고 아팠겠는가. 그날 이후로 엄마는 나쁜 꿈을 꿀 때마다 우리에게 각별한 주의를 주었다.


동생을 많이 혼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또 어디선가 다쳐서 오면 안 되니 말이다.


늘 나보다 머리 크기 하나 정도가 작았던 내 동생.

그러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갑자기 키가 쑥쑥 자라더니 결국 185cm 정도로 자랐다. 점점 철이 들고 어릴 때처럼 까불거리지도 않는다. 나보다 차분하다. 의젓하고 듬직하게 잘 자라서 지금은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고마웠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비가 갑자기 내려서 우산이 없을 때 가끔 버스정류장까지 우산을 챙겨서 마중을 나와준 날들. 그리고 수시에 합격해 대학교에 가기 전 알바를 잠시 했는데,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용돈이라며 10만 원을 투척하곤 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것이 동생에게 처음으로 받아 본 선물이었다. 맨날 내가 동생에게 용돈을 주거나 선물을 챙겨주다가 처음으로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고맙게도 나보다 통이 크다. (ㅋㅋㅋㅋ)


아. 한 번은 동생에게 진심으로 삐졌던 일이 있다.

원래 싸워도 금방 풀어지는데, 이 일은 속으로 오래 꽁해 있었던 것 같다. 내 동생보다 한 살 많은 사촌 형이자 나보다는 한 살 아래인 사촌 동생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내서 거의 형제나 다름없는 관계다. 어릴 땐 셋이 같이 자주 놀았는데 누나는 안중에도 없을 때가 많을 정도로 형을 굉장히 좋아했다. 어느 날 동생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형이 더 좋아, 누나가 더 좋아?"

정말 뻔뻔하게도 형이 더 좋다는 대답을 한다. 너는 어떻게 친누나인 나보다 사촌 형이 더 좋을 수가 있냐고 따지며 진심으로 삐졌다. (ㅋㅋㅋㅋㅋ) 물론 지금은 이해한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친구 같은 사이, 형제 같은 사이로 잘 지내고 있다. 나로서는 사실 고맙고 든든하다.


사촌 동생, 나, 내 동생.


하도 까불어서 얄미울 때도 많았지만, 동생이 없었다면 내 유년시절은 많이 외롭고 가혹했을 것이다. 좀 더 다정한 누나가 되어 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다. 그나마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에 다정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동생에게 애틋했던 것 같다. 생일이 빠른 동생이 학교를 일찍 들어가게 되었는데, 등교하려면 버스를 타고 한 정류장을 가야 한다. 매일은 아니었겠지만 초반에는 계속 같이 등교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내가 동생 손을 꼭 잡고 가더란다. 그 모습이 정말 예뻤다고 한다. 나는 버스 안에서도 동생의 손을 놓지 않았다.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았기도 하고 혹여라도 다치면 안 되니까. 하루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끼여서 가게 됐는데 작은 내 동생이 다칠까 봐 손을 꽉 붙잡고 온몸으로 막으며 보호를 했다.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마음으로는 동생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아꼈었던 게 분명하다. 뭐, 어릴 땐 상당히 귀엽기도 했다.


엄마 아빠 입장에서는 학교를 일찍 간 개구쟁이 아들이 못내 걱정이 되었을 텐데. 내가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고 기특하면서도 감동이셨나 보다. 그때 이야길 자주 꺼내시던 걸 보면.


비록 정약전 정약용 형제처럼 꽃처럼 아름다운 우애는 아니지만, 서로 표현을 전혀 안 하는 투박한 남매이지만, 마음으로는 서로를 귀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


미워하고 질투하고 싸울지언정 의지할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형제자매 관계에서는 '이해, 양보, 사랑, 존중'이 필요하다. 비단 형제자매 관계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부모자식, 부부 등 가족 관계에서는 이것이 없으면 끝없는 다툼과 증오를 불러일으키도 한다.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매, 형제의 정이란 참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쌓이는 모양이다. 싫어하면서도 껴안고, 껴안으면 웃음이 나고, 그렇다고 다 풀리는 건 아니고, 그래서 늘 할 말이 남아 있는 사이. 어린이에게 자매, 형제는 부모라는 절대적인 조건을, 지붕을 공유하는 동지다.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 만나 평생을 알고 지내는 친구이기도 하다. 각자 서투른 채로, 서로의 사회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바로 자매, 형제다. 그러니 다투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일생일대의 과제가 되는 것 아닐까."


지금도 여전히 서로에게 퉁명스러운 남매이지만, 어린 시절의 모든 것을 함께 공유했던 사이이기도 하다.


섭섭한 것도 많고,

미안한 것도 많고,

고마운 것도 많은,

기특하고 든든한,

하나뿐인 내 동생.


앞으로는 얼굴이든 몸이든 마음이든, 흉터가 남지 않는 건강한 인생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모든 상처 또한 건강하게 잘 회복해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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