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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받았던 질투는?

'질투와 시기' 다스리는 법.

by 위시러브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 본 질투는 7살 때다.

그때 두 개의 삼각관계를 겪었다. 먼저 첫 번째 삼각관계다. 친한 친구가 잘생긴 동네 오빠를 좋아했는데, 그 오빠는 나를 좋아했던 것이다. 내 인생의 첫 설렘을 선물해 준 오빠다. 만화에 나올 법한 잘생긴 외모. 다정한 말과 행동들. 만화 <캔디>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이 떠오를 정도랄까. 그런데 나는 그 오빠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훗날 그 오빠를 좋아했던 친구와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오빠가 나를 좋아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그리고 왜 나를 좋아하는지도 물어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피아노 학원 문을 활짝 열어 놓고 피아노를 치던 시절이었다. 동네 피아노 학원을 잠깐 다녔었는데, 그때 피아노 치던 내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잠깐 배운 거였지만, 다니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ㅋㅋㅋㅋㅋㅋㅋ) 얼마 후 그 오빠가 금방 이사를 가버려서 엄청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만화 <캔디>를 떠올리면 아직도 그 오빠가 떠오른다.


두 번째 삼각관계도 조금 비슷하다. M이라는 여자아이가 B라는 남자아이를 좋아했는데, B는 나를 좋아했다. 자꾸만 우리 집 대문 앞에 찾아와서 놀자고 외치던 아이였다. 셋이서 소꿉놀이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곤란해졌다. M이 자신이 엄마 역할을 할 테니 B가 아빠 역할을, 내가 아기 역할을 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B는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엄마 하지 않으면 이 놀이 안 할 거야." 그 말을 들은 M의 얼굴빛이 안 좋아진다. 그래도 나에게 양보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나는 아기 역할이 좋다며 두 친구를 설득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 역할을 거의 해보질 못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우리가 평화롭게 놀 수 있는 게 더 좋았다.


이것은 그저 귀여운 질투다.

다만 여기에서 조금 더 과해지면, 불편하고 힘들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질투가 났을 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나는 잘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살면서 질투와 시기를 많이 받았다. 그에 따른 상처도 많이 입었다. 대부분 '관계'와 연관이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칭찬을 해서.

내가 누군가와 가깝게 지내서.

혹은 자신이 갖지 못한 '무언가'를 내가 갖게 되어서.

이 '무언가'는 물건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성격적인 특징 같은 거랄까.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거나 좋아하면 나를 깎아내리거나 상처를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 사람을 이해하고자 노력해 본다. 이 친구가 나에게 왜 이럴까. 저 사람이 나한테 왜 이러지. 왜 갑자기 내 마음을 긁고 할퀴며 상처를 줄까. 혹시 내가 무언가 잘못한 건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렇게 세심히 살피다 보면 아, 이래서 질투의 감정이 들었구나.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그중에는 뒤늦게 스스로 솔직하게 인정해 오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왜 인정보다는 질투와 시기를 더 많이 할까?

사람들은 질투심이 들면 왜 애써 누르고 외면할까?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며 질투심을 감출까?


질투와 시기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사람이 못나진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추하다'고도 표현했다. 그리고 질투는 수많은 관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 물론 질투라는 감정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안에서 긍정적인 힘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질투심을 느낄 때, 나는 네 번 괴로워한다. 우선 질투하는 것 자체가 괴롭고, 질투하는 나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 괴롭고, 내 질투심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워 괴롭고, 내가 그런 시시한 감정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괴롭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이다.


당신은 언제 질투에 휩싸이는가?

나는 보통 연애할 때 질투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이 굳건해진다면 조금씩 사그라진다.


질투가 심하면 과한 집착을 부르기도 한다. 무서운 질투 말이다. 예전에 질투가 매우 심했던 사람과 만난 적이 있다. 너무나도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다. 매일 내가 누구와 연락을 했는지, 누구에게 연락을 왔는지를 모두 알려고 하며 휴대폰을 보여달라고 했다. 보여주지 않으면 불타는 질투와 의심을 내보이고. 그때 인연이 끊어진 사람들도 조금 있다.


친구와 놀다가 둘이서 노래방을 갔던 어느 날이다.

창밖을 보니 그 사람이 우릴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얼마나 소름이 돋았는지 모른다.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언제부터 우릴 따라온 거야? 혹시나 남자를 만나지 않을까 싶어서 여자친구와 만나는 일조차 질투하고 불안해했다. 바람을 피운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싶었다. 점점 지쳐갔고 마음도 식어버렸다. 과도한 질투와 의심, 집착들이 결국 이별을 불러왔다.


지나친 질투는 결국 자신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불타는 질투를 참지 못하고 마음 가는 대로만 행동하다 보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질투와 시기가 불러온 비극이 얼마나 많았던가? 과거의 수많은 결투, 전쟁, 살인 등은 질투가 얼마나 뿌리 깊은 인간의 감정인지를 보여준다.


예전에 본 뉴스 하나가 떠오른다.

한 40대 남성이 옛 직장 동료가 주식으로 큰돈을 벌자 수억 원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다. 결국 그는 옛 동료를 계획적으로 살해했다. 한 순간 뒤틀린 질투심으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뒤늦게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 그 동료는 돌아올 수 없고, 가족들은 크나큰 슬픔에 빠졌지 않은가.


얼마 전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신림동 칼부림' 사건이다. 1명이 살해당하고, 3명이 다쳤다. 전문가들은 범죄의 동기를 질투, 시기 등으로 분류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의 것을 파괴하고 싶은 심리. 그 분노가 쌓이다 엉뚱한 곳에서 터진 것이다. 범인은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분노에 가득 차 범행했다.", "남들보다 키가 작아 열등감이 있었다. 오랫동안 나보다 신체적•경제적 조건이 나은 또래 남성들에게 열등감을 느껴왔다."


질투나 열등감을 느낀다고 해서 누구나 이렇게 하진 않는다. 하지만 '질투심', '열등감'은 우리가 잘 다루어야 하는 감정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질투는 남을 찌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을 찌르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질투라는 독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부러움, 질투, 시기, 선망 등.

이런 감정이 들었을 때 건강하게 대처하려면?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질투의 마음은 누구나 생겨날 수 있다. 아이도 어른도 마음대로 다루기 어려운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후 질투의 이유를 잘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 자존감을 높인다.

일반적으로 질투에는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다. 누구나 열등감이 존재하지만, 열등감을 대하는 태도는 모두 다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쉽게 질투심에 휩쓸리지 않는다.


세 번째. 비교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경쟁하고, 비교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마음을 평화롭게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비교의 늪에 빠지다 보면 우울이나 불안, 분노가 커지기가 쉽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내려 노력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더 투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겸손' 능력을 갖춘다.

내게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잘난 척'만 아니면 되는 줄 알았다. 그건 내 착각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칭찬을 말하는 것도 '자기 자랑'인데 말이다.


데일 카네기가 말했듯이, "나를 능가할수록 상대는 자기가 인정받는다고 느낀다. 하지만 내가 상대를 능가하면 상대는 나에게 질투와 시기심을 품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기 업적을 너무 드러내는 자신은 현명하지 못하다. 겸손은 언제나 통하는 처세술이다."


질투심.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질투심이 솟아오를 때 질투심이 자신의 삶을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두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각자가 체득한 방식으로 질투심에서 해방될 수 있게 멋지게 잘 이겨내 보길. 그럴수록 긍정적인 일들이 찾아올 것이다.


꽃은 다른 꽃을 질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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