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머스 히니의 "The Cure at Troy"

"트로이에서의 치유" 중에서 "Double-take - 재인식"

by Kevin현

* 커버 이미지: The Burning of Troy - Johann Georg Trautmann

(트로이의 파괴 - 요한 게오르그 트라우트만)


1200px-Adam_Elsheimer_-_The_Burning_of_Troy_-_WGA7505.jpg The Burning of Troy - Adam Elsheimer (트로이의 파괴 - 아담 엘스하이머)



제가 출판하고 싶은 시집

"Dicit Historia(역사는 말한다)"의 도입부에 포함시키고 싶은 그림과 글입니다.

번역은 제가 직접 했습니다.




저의 "Dicit Historia"의 제목이자,

시집의 도입부에 인용한 발췌문의 출처이기에,

오래전 제가 해놓은 한글 번역판을 살짝 다듬어 함께 올립니다.


제가 좋아했던 구절이라 시집 제목으로 골랐었는데,

그가 그럴 자격이 있는 지는 100% 의심스럽지만,

나중에 Biden이 인용해서 많이 유명해졌더군요.


제가 인류의 역사를 생각할 때면 항상 품어봤던 불가능한 희망을

셰이머스 히니 선생님께서도 고민하셨다는 점에서

더욱 제 기억에 남았던 글입니다.

언어의 craftman이라고 불리셨던 분답게,

Rhyme을 은근슬쩍 발라놓으셨더군요...


영어원문으로는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Off-line에서 강의를 하지 않는 이상,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는 제약과 한계점들이 많지만,

아무튼 번역에 약간의 노력을 들였습니다.


안되는 글빨로 설명을 좀 해드리자면,

(이 시는 좀 특별하니까)


1,2연에서는,

인간들이 서로 고통을 주고 받는 현실의 고해(苦海)에 대해 말해줍니다.

("바다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3연에서는, 무덤의 이편, 즉 차안(此岸)에서는 희망을 품지 말라는

역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밀물(tidal wave)처럼 밀려들 수도 있을

정의에 대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4연에서는, 복수를 넘어선 피안(彼岸)에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완전한 변화(sea-change)를 희망하며,

치유의 기적을 믿어보라고 권유합니다.


5연에서는, 그 기적이란 다름 아닌, 순전한 것이며,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인,

바로, 감정, 느낌, 느끼는 행동에 대한 Double-take(재인식)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시트콤에서 자주 벌어지는 상황처럼, 본인도 처음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다시 인지하고 깜짝 놀라며 받아들이는 반응 - 저의 말빨은 여기서 역부족...)

즉, 인간에게 있어 그 기적이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다!?

"지성"이 아니라 "감성"의 "계몽"?이 아닌가 하는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그리고 만일 신화 속에서나 벌어질 것 같은 그런 일,

신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오는(Noah를 부르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6연에서는, 그것은 문명의 새로운 Chapter와도 같이,

자신의 term(임기, 때) 을 시작하는 순간에 이른 새로운 Life(삶)이

새로운 Modus Vivendi(삶의 양식)이 탄생하며 내지르는 외침을

누군가 듣고 있음을 뜻하는 거라고 주장하십니다.


셰이머스 히니 선생님의 훌륭한 작품들 중에

어쩌면 다소 평범해 보이는 이 글에 제가 특별하게 감동을 받았던 까닭은,

제가 그토록 정신적으로 애증관계에 있었던 우리 민족에 대해

제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품었던 희미한 희망과도

일맥상통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저의 시집

"Dicit Historia"의 마지막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어떤 글귀와도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 맞게 좀 변형시켜서 말씀드리자면,

"아는 만큼 꼴도 보기 싫었던 우리 민족과 우리나라의 역사..."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가 아니라, 전 "우리 것이 싫었습니다..."

외국이라고 해서 결코 완벽하지는 않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안드로메다의 어느 문명이 겪는 고통보다

동족인 지구인들이 겪는 비참함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처럼,

저와 동족인 나라의 모습이기에, 더욱 슬프고 가슴 아팠다고 할까요...

지금이야 K문화네 G뭐네 떠들며,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고들 하지만,

적어도 제가 어리고 젊었을 땐,

"그럭저럭 잘 굴러가던 후진국"이었던 그 시절엔

개인적으로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식민지 노예교육과 군사독재와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가

사회 곳곳에 독버섯이나 독초처럼 번져가고 있어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환경에,

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불편한 기분...

"한국인은 정이 많다"는 말도 개싫어했습니다.

"난 정보단 정의!!!!!!!!!! 정보단 공정!!!!!!" 이딴 식이였으니까요...

그래도 남들처럼, 대충 비벼져가며, 버무러져가며, 그렇게 살아왔지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말처럼...


많은 분들이 동의하지 않으시리라 생각하지만,

우리 국가와 우리 사회에 대해 제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3가지 명제가 있습니다.


1.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진실로) 해방된 적이 없다.

2.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진짜로) 민주주의였던 적이 없다.

3.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선진국이었던 적이 없다.


이번에 터진 "계몽령 사태"는,

너무나 뿌리가 깊고,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위의 3가지 기저질환이

어떻게 2024년의 "무늬만" "대한민국"인 이 나라에서

그 절정(culmination)에 이르러 발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Happening"과 같은 예시에 지나지 않기에,

개인적으로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아직도 여전히 <모여라 꿈동산>에 사는구나..."

오래전부터 제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 실현된 것일 뿐..


하지만, 이 3가지 명제를 긍정으로 바뀌기 위해 노력하시고 희생하셨던 분들께는

늘 부끄럽고, 죄송스러워하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Dicit Historia"를 통해 내고자 하는 목소리와도 같고요.

우리가 현재 누리는 것은 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임을 압니다.

요즘 시대에 "민족의식", "역사의식", 운운하면,

"틀딱"이나 "꼰대"라는 소리 듣는다는 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알던 말이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못난 놈"은 되더라도 "못된 놈"은 되지 말자는 마음으로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탈조선"도 이미 포기했구요...ㅋㅋ

"탈지구"를 한다면 모를까...ㅋㅋ


그리고 이젠 아래의 이 글귀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뭔가 대단한 Revelation이 펼쳐지길 두려움과 함께 기대하는 것처럼.

"아, 죽어도 한반도에서 죽으란 팔자였나 보구나...

그렇게,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 제대로 된 꼴을 꼭 보고 죽으란 팔자였나?"

개구라라고 해도 좋습니다.

누군가의 The Second Coming도 2천년 넘도록 끈기있게 기다려온

지구별 꼬꼬마 텔레토비들, 또는 지구행성(혹성) 원숭이들이

또한 우리들의 모습, 일그러진 자화상 아니겠습니까?


독일어 원문을 찾을 수 있다면, 제가 다시 번역해보고 싶었는데,

전 못 찾았습니다. 누가 좀 찾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인류문명의 대전환기에는,

변화된 새로운 삶, 새 문명의 원형을 제시하는

성배의 민족이 역사에 나타난다.

그 민족은 본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깊은 영성과 지혜를 간직한 민족으로서,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이상을 품고 있으나,

끊임없는 외침과 사악한 폭정 아래 억압되어,

그 이상이 깊은 내상으로 변질된

쓰라린 삶을 살아가는 민족이다.

그러나 대전환의 때가 이르면,

새로운 삶의 원형을 제시하는

성스러운 소명을 반드시 수행하게 된다.

- 루돌프 슈타이너 (1861 ∼ 1925)






Double-take from "the Cure at Troy"

- Seamus Heaney


Human beings suffer,

they torture one another,

they get hurt and get hard.

No poem or play or song

can fully right a wrong

inflicted and endured.


The innocent in gaols

beat on their bars together.

A hunger-striker's father

stands in the graveyard dumb.

The police widow in veils

faints at the funeral home


History says, Don't hope

on this side of the grave.

But then, once in a lifetime

the longed for tidal wave

of justice can rise up,

and hope and history rhyme.


So hope for a great sea-change

on the far side of revenge.

Believe that a further shore

is reachable from here.

Believe in miracles

and cures and healing wells.


Call the miracle self-healing:

The utter self-revealing

double-take of feeling.

if there's fire on the mountain

or lightning and storm

and a god speaks from the sky.


That means someone is hearing

the outcry and the birth-cry

of new life at its term.


"트로이에서의 치유" 중에서

- Seamus Heaney


인간들은 고통을 겪는다.

그들은 서로를 고문한다.

그들은 상처를 입으며 (무감각하게) 단단해져단다.

어떤 시나 연극이나 노래도

가해지고 감내되는

그릇된 일을 온전하게 바로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감옥들 안의 죄 없는 자들이

쇠창살을 함께 두들겨댄다.

단식투쟁을 하던 자의 아버지가

묘지에 말없이 우두커니 서있다.

경찰의 과부는 베일을 두른 채

장례식장에서 혼절해 쓰러진다.


역사는 말한다, 무덤의 이편에선

희망을 품지 말라고.

그러나, 인생에서 한 번쯤,

갈망해오던 그 정의의 밀물이 일어나,

그리하여 희망과 역사가

운율을 맞출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저 머나먼 복수의 건너편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완전한 변화의 바다를 희망하라.

저기 더 먼 곳에 있는 하나의 해안이

이곳으로부터 가닿을 수 있는 곳이란 걸 믿으라.

기적을 믿으라,

그리고 치유들과 치유해주는 우물들을.


그러한 기적을 자기치유라 불러라.

순전하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주는, 마치

깜짝 놀란듯한, 감정에 대한 재인식이라고.

산 위에 불길이 타오르고

또는 번개가 치고 폭풍이 일고

그리고 어느 신이 하늘로부터 말을 한다면,


그것은 바야흐로 자신의 때가 된

새로운 삶의 외침, 그 탄생의 외침을

누군가 듣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