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8 / 덕경편 39장(3/3)
어제 '비호 (非乎)?'로 끝났지요? '그렇지 않은가?' 노자의 되물음이 귓전을 떠나지 않습니다. 뭐가 그렇지 않냐고요?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삼고, 낮은 것은 높은 것의 바탕이라는 다짐. 도, '하나'를 품고 산다는 건 그런 뜻이 아니겠냐는 동의어린 강조.
유난히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들, 대접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 서열을 늘 살피는 사람들, 주최측으로부터 자기가 몇 번째에 소개되는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 한 마디로 도에서 멀어진 사람들입니다. 귀함과 높임만 받으려고 들기 때문에 위태롭고 밉쌀스럽습니다. 머잖아 거꾸러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정승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안 가는 거겠지요.
성경에도 있지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요, 높이는 자는 낮아질 거라는. 노자를 만난 적 없는 예수님이 도를 말씀하시네요. 성인은 진리를 배워서 아는 게 아니니까요. 자기 속에 이미 있기 때문에 그냥 쓱~ 자기 안을 들여다 보면 압니다. 척 보면 압니다.
우리는 요? 우리도 물론 알 수 있지요. 우리 안에 있으니까요. 도는 만물에 내재하니까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존재니까요.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거죠. 대접받는 그 달콤함에 취해서.
그러므로
지나친 명예는 명예가 아니다
그로 인해 추락하고 만다
옥처럼 고귀하려 하지 말라
돌처럼 소박하고 담담하라
소소한 명예를 지키려다 명예 자체를 잃게 됩니다. 풀이에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원문에서 노자는 수레의 비유를 듭니다. 수레를 헤아리면 수레가 없어진다고. 무슨 뜻일까요? 수레를바퀴, 의자, 발판, 손잡이 등등 부품으로 분리, 분해하면 수레 자체는 못 보게 된다는 거죠. 그러기에 옥이 되지 말고 돌이 되라는 거죠.
옥이 수레의 부품들이라면 돌은 수레 전체를 의미하는 거지요. 옥이 귀함과 높임이라면 돌은 천함과 낮음입니다. 옥이 가공석이라면 돌은 옥을 품은 원석입니다. 돌 안에 옥이 있습니다. 옥의 가치가 공자적이라면 돌은 노자적 가치입니다. 옥은 드러나고 대접받으려고만 하는 작은 명예라면 도는 높고 낮음을 함께 품은 온전한 명예입니다.
하늘이 맑으려고만 하면 종당엔 쪼개지고, 땅이 단단해지려고만 하면 머잖아 갈라지며, 계곡이 가득 차려고만 하면 끝내는 마르고 맙니다. 사람도 귀함, 대접만 받으려고 하면 질시와 표적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돌처럼 소박하고 담담하게 처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명예로움이기에.
다음주에 40장으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39 장
예부터 하나를 얻어서 된 것들이 있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평안하고
신은 하나를 얻어서 영험하고
계곡은 하나를 얻어서 가득차고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살아가고
통치자는 하나를 얻어서 바르게 다스린다.
이 모든 것은 덕의 온전함에 기인한다.
하늘이 끝없이 청명하기만 하면
머지않아 탁해질 것이다.
땅이 끝없이 안정적이기만 하면
머지않아 쪼개질 것이다.
신이 끝없이 영험하려고만 하면
머지않아 신통력이 사라질 것이다.
계곡이 끝없이 가득차려고만 하면
머지않아 말라버릴 것이다.
만물이 끝없이 살려고만 하면
머지않아 소멸할 것이다.
통치자가 끝없이 높임만 받으려고 하면
머지않아 실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귀함은 천함을 뿌리로 삼고
높음은 낮음을 바탕으로 삼는다.
이런 이유로
옛 왕이 스스로를
고아 같은 자,
짝 잃은 자,
보잘 것 없는 자라고 낮추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함을 근본으로 삼는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러므로
지나친 명예는 명예가 아니다.
그로 인해 추락하고 만다.
옥처럼 고귀하려 하지 말라.
돌처럼 소박하고 담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