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주 따라 발길 옮긴 길 위의 작가 김주영
저는 원래 기자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첫 글쓰기를 기자 생활로 시작했습니다. 호주 이민 중에도 기자였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 8년 만에 다시 기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작가'라고 매우 과분하게 호칭하지만 저는 '기자'라고 불리는 것이 가장 익숙하고 편안하고 친근합니다.
저는 주로 사람 이야기를 씁니다. 호주교민신문에서도 '신아연이 만난 사람'을 연재했지요. 저는 겉사람보다 속사람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음과 영혼의 결을 따라 공감하고 치유를 얻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브라보마이라이프>>라는 시니어 월간지인데 10월에는 『객주』의 김주영 작가를 만났습니다. 김 작가님은 제 아침글의 독자시기도 합니다. 이따금 카톡으로 격려도 해 주십니다. 신씨 가문의 영광이지요.^^
김주영, 그는 청송의 기적이다. 맹자 어머니는 맹자를 장터에 둘 수 없다며 결연히 거처를 옮겼지만, 주영의 어머니는 장터 한복판에 아들을 뒀다. 맹자 어머니는 맹자를 학교 부근에 묶어두었지만, 주영의 어머니는 아들이 학교를 가는 둥 마는 둥 온종일 장터를 맴돌아도 그냥 내버려뒀다. 그리하여 맹자는 당대에 가장 말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작가가 되지 못했고, 주영은 장터를 샅샅이 뒤진 덕에 대한민국 최고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쯤 되면 맹모삼천지교가 무색하다. 적어도 주영에겐. 그러기에 기적이라는 것이다. 장터와 길 위의 작가 김주영, 그는 지금도 돌아다니는 중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청송의 첩첩산중 외딴 마을. 1939년생인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도 그런 가난이 없이 자랐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도시락 한 번 못 싸 다녔을 뿐 아니라 교과서도 없이 잡기장 하나 들고, 그의 표현에 의하면 ‘그저 바퀴벌레처럼 왔다 갔다’ 했다.
스스로를 '바퀴벌레'라고 칭할 수 있는 파격적 진솔함! 속된 말로 '매력 쩔지' 않나요? ㅎㅎ
푸른 소나무의 고장, 그래서 ‘청송’이지만 정작 그는 푸른 소나무를 그려본 적이 없다. 늘 흰 소나무를 그렸다. 왜냐하면.....
왜 그랬을까요? 김주영은 푸른 소나무를 왜 희게 칠했을까요? 설마 색맹? 궁금하지 않으세요? 답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나옵니다.^^
저는 영락없는 외톨이에 철저한 약자였어요. 그러나 그 한계를 이겨낼 수 있는 내면적 힘도 동시에 있었던 것 같아요. 제게는 글이 그 힘이었지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동력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너무 쉽게 좌절하고 스스로를 내던져버리지만 않는다면. 돈이라는 것도 그래요. 돈은 매우 중요하지만 돈보다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돈보다 가치 있는 것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10가지라면, 저는 20가지 쯤 나열할 수 있어요.
보부상이 그랬듯 우리 모두는 뜨내기이자 떠돌이로 오늘이란 시간을 살아갑니다. 떠도는 인생은 세파에 시달리며 때론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지요. 제가 80세에 쓴 『뜻밖의 생』은 바보가 주인공이에요. 바보는 이리 치이고 저리 당하지만 긍정심을 잃지 않지요.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을 수용하는 절대 긍정성, 산다는 건 결국 그런 거지요.
노령의 작가에게는 강인한 삶의 신념이 있습니다. 모든 고통과 아픔에 의연히 대처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고통, 아픔, 슬픔, 사랑도 모두 내 것이니 비빔밥처럼 한데 섞어 견디고 인내하는 것이죠. 그는 글을 통해 인생의 파고를 넘었지만, 누구에게나 잠재된 에너지가 있다는 말이 위로가 됩니다.
그는 잘 웃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한다고 했습니다. 울고 싶을 땐 오히려 웃는다고 했지요.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잘 웃습니다. 80 평생 울고 싶은 날이 더 많았다는 뜻일테지요.
이제 본격적으로 김주영 작가를 만나 볼까요?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12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