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편을 향하여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9 / 덕경편 40장(1/3)

by 신아연

39장에서 살펴 본 '하나'라는 개념은 '반대편끼리'라는 요소가 결합된 하나라고 했지요. 두 가닥을 반대편으로 꼬아 만드는 새끼줄처럼. 남자, 여자가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부부이듯이.


부부라는 '하나'만큼 반대적 요소의 결합이 있을까요? 부부를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두 마음이 결합된 일심이며, 두 몸이 이룬 한몸인 거지요. '절대 아니다, 부부는 명백 이심이체다' 라고 반박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결속된 하나'라는 건 분명해요. 배우자를 만나는 것을 나의 반쪽을 찾는다고 표현하듯이. 부부 중 한쪽을 잃어보세요. 자신이 반쪽처럼 느껴질 거예요. 제가 경험해 봐서 알아요. 세월이 흐르면서 떨어져 나간 반쪽의 단면에 새살이 돋아 스스로 온쪽이 되긴 하지만.


하나는 도의 다른 이름이죠. 그래서 높여 '하나님'이라고 하는 거죠. 서양의 'GOD'이란 말을 우리말로 참 잘 옮겼어요. 저는 매번 감탄합니다.



저는 2013년 8월 1일, 한국으로 돌아오던 그 죽음 같은 날을 잊지 못합니다. 남반구에서 북반구를 향하던, 한겨울에서 한여름으로 들어오던, 두 몸이 한 몸으로 환원되던, 삶을 죽음에 반납하는 것 같던, 비행일정조차 새벽에 떠나 밤에 당도한, 하지만 그 날은 그 모든 경계선을 넘어 새로 살기 시작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이만큼 살아냈습니다. 그리고는 또 부단히 반대 쪽의 어딘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아직도 즐겁기만 하다면 그건 곧 미숙함의 증거겠지요. 오직 즐겁기만 바란다면 그건 거의 구제불능이구요. 그럴 수가 없어요. 그래서도 안 되구요. 반대편을 향해 부단히 나가고 되돌아 오가며 순환하는 게 세상 이치니까요. 새옹지마를 잊지 말아야 해요. 새옹지마의 순환 속에 즐거움도 괴로움도 오고가는 거지요.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이 한 세트로 들락거리듯이.


삶은 좋은 거고, 죽음은 나쁜 거고. 아마도 그런 건 아닐거에요. 안 죽어봐서 모르지만 분명히 그럴 것 같아요. 죽음은 삶의 또다른 국면이자 열린 문일 것 같아요.


반대편을 향하는 것이 도의 운동 방식이고


오늘 40장은 단 4줄로 된, 도덕경 전체에서 가장 짧은 장이지만, 이해하기 가장 어렵고, 이런 알듯 모를 듯한 형이상학적 표현으로 인해 '도덕경은 어렵다, 골치 아프다'란 인상을 주는 것 같아요. 실상 40장의 내용은 앞의 도경에서도 여러 번 나왔던 말입니다. 노자도 했던 말을 또 하는 걸 보면 우리처럼 깜빡깜빡 하는 것 같아요. ^^


내일 계속 볼게요.

고맙습니다.


제 40 장


반대편을 향하는 것이 도의 운동 방식이고

유약함이 도의 작용이다.

만물은 유에서 살고

유는 무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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