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비웃음을 사고 있다면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12 / 덕경편 41장(1/5)

by 신아연

오늘 마침 41장을 시작하는 날이라 상수, 중수, 하수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저하고 이렇게 도덕경을 공부하는 것이 어떠신지 여러분께 다시 묻게 되네요. 반기고 계시면 상수에 속하는 분들입니다. 말이야 좋은데 현실살이가 어디 그런가, 노자 말씀대로 살아지더냐고, 그냥 듣고 마는 거지. 하신다면 중수입니다. 도는 무슨 도,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에 개 풀뜯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하고 비웃는다면 하수입니다.


신아연은 한가한 사람이지만 나는 먹고 살기 바쁘니 이딴 헛소리 보내지 말라는 경우도 진짜 있었다니까요. 하수는 그때 한차례 걸러졌지만 중수는 어떤가요. 보내니까 읽긴 하지만 실천에는 별 관심 없는 분들, 오늘 다시 스스로를 점검해 보셨으면 합니다. 저의 전달력 부족은 다른 문제고 도덕경만큼은 정말이지 삶의 기둥으로 삼을 만 합니다. 제가 실천해 보니 '강추'할 만 하더라구요.


압권은 그 다음입니다. 하수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는다면 도라고 할 수 없다는. 진리의 이름으로 핍박받기도 하는데 웃음거리 되는 정도야.


수준 높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성실하게 실천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한다.

하수는 도를 들으면

조롱하며 비웃는다.

그렇게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그렇다면 도를 실천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날까요? 내일 살펴보겠습니다만, 어차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고 1장에서 전제하고 있듯이요. 도를 언어로 정의내릴 수 있으면 그건 진정한 도가 아니라는. '이런 게 도다' 하는 순간 그건 도가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그거 빼고 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나요? 물론 나훈아 씨는 '눈물의 씨앗'이라고 하셨지만. 그렇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요? 김광석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긴 고사하고, 눈물의 씨앗이 될 것 같은 사랑은 하지 말라는 거지요. 최무룡, 김지미는 사랑해서 헤어진다고 했지요. 사랑하는데 왜 헤어집니까. 사랑의 역설입니다. 제 전 남편은 저를 사랑해서 때린다고 하더라구요. 그 사람에겐 그 또한 진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시련을 주시고 연단하시죠. 차라리 안 사랑하시면 좋겠어요. 그냥 냅 두시면 좋으련만.


사랑을 예로 들었습니다만, 사랑만큼 사람 헷갈리게 하는 것도 없지요. '애가애 비상애(愛可愛非常愛)'라고 할까요. 사랑을 정의내리는 한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도 역시 그렇습니다. 말로 할수록 알쏭달쏭 아리까리합니다.


도는 현실세계 '너머'에 있습니다. 애초 언어 밖의 영역입니다. 에고가 아닌 참나의 눈으로 찾아집니다. 에고가 시달릴 때 드러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죽음을 앞 둔 순간에 확연히 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한 고린도 전서 13장 말씀처럼 도는 '그때에야' 또렷이 정체를 드러낼 것입니다. 물론 그때가 반드시 육신의 죽음일 필요는 없겠지요. 살아서 죽은 자, 거듭난 자라면 '지금 여기'는 왜 안 되겠습니까.


살아서 도의 완전한 실천자로는 예수가 모델입니다. 예수는 에고적으로 본다면 세상 바보, 최 하수지만 참나적으로 본다면 최 상수, 하나님의 아들 수준이니까요.


불교적 트랜스휴머니스트인 마이클 라토라는 41장을 이렇게 풀어냅니다.


도는 어리석음을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들에게만 매력적이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는 자들은 현명한 사람들이 도를 따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복잡하거나 비범하거나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하고 평범하고 어리숙하다.


내일 계속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41 장


수준 높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성실하게 실천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한다.

하수는 도를 들으면

조롱하며 비웃는다.

그렇게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예부터 이런 말이 있다.

밝은 길은 어두운 듯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물러서는 듯하며

평탄한 길은 울퉁불퉁한 듯하고

높은 덕은 계곡과 같고

아주 깨끗한 것은 더러운 것 같으며

매우 넒은 덕은 부족한 듯하고

건실한 덕은 게으른 듯하고

정말 참된 것은 탁한 듯하다.


아주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고

아주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으며

정말 큰 음은 소리가 없고

정말 큰 형상은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도는 감춰져 있어 이름이 없지만

오직 도만이

온갖 것을 기르고 베풀기에

잘 시작하고 잘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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