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14 / 덕경편 41장(3/5)
아주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고
아주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으며
정말 큰 음은 소리가 없고
정말 큰 형상은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게 또 무슨 말입니까. 앞 단락에서는 역설적이며 모순되는 것들의 경계없음의 실상, 반대되는 것들이 운동선상에서 하나로 이어짐, 불협화음의 조화 등 '말이 안 되는 말이 됨'을 말했지요.
이 단락에서는 도의 스케일을 다루고 있네요. 매우 익숙한 '대기만성'이란 말이 여기서 나오네요. 보통 그렇게들 풀이하죠. 큰 그릇은 늦게 된다는. 근데 맥락상으론 엇나가 보여요.
보세요,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고(대방무우), 큰 소리는 소리가 없고(대음희성), 큰 형상은 모습이 없다(대상무형)는 '없다 시리즈'로 나가다가, 느닷없이 큰 그릇은 늦게 된다니요! 조응이 안 되잖아요.
따라서 대기만성(大器晩成)이 아니라 대기면성(大器免成)이 옳습니다.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는. 늦을 만(晩)자가 아니라 면할 면(免)자를 써야 합니다. 노자가 착각한 게 아니라 나중 사람들이 잘못 옮긴 것 같아요.
큰 그릇, 즉 마음과 정신, 영혼의 성장과 성숙에 그 끝이 있을 수 있나요? 이 정도면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바로 미성숙의 증거지요.
물론 그릇을 재능의 성취로 비유할 수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이미 완성된 큰 그릇, 김연아 같은 사람도 많습니다.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기는 꼭 늦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니, 원문의 '대기면성'을 '대기만성'으로 살짝 비틀어, 되는 일이 없어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려는 거겠지요. 물론 60살이 넘어 성공한 켄터키후라이드치킨 영감도 있긴 합니다만.
무엇보다 노자 같은 위대한 인물이 인간사 자잘한 성취 따위를 격려하자고 대기는 만성이라고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사람 됨, 인간으로의 완성’을 그릇에 비유하고, '그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일에는 끝이 없다(대기면성)'고 했을 겁니다.
제가 <브라보마이라이프>라는 시니어 매거진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갔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이 저의 주업무입니다. 일종의 유명인사 쫓아다니기죠.
각 분야의 최정상에 오른 분들을 만나면서 내린 저의 결론이 '대기만성은 없다'는 거였어요. 그분들은 모두 김연아처럼 어린 나이, 젊은 시절에 이미 두각을 나타냈고 그 길로 쭉 잘나갔던 거더라구요. 지금 이 나이까지 못 이뤘다면 결국 못 이루는 거에요. 그러나 저는 실망은 안 합니다. 인생에서 성공이 다는 아니니까요. 배 아파서 하는 소리가 절대 아녜요.^^
제 41 장
수준 높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성실하게 실천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한다.
하수는 도를 들으면
조롱하며 비웃는다.
그렇게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예부터 이런 말이 있다.
밝은 길은 어두운 듯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물러서는 듯하며
평탄한 길은 울퉁불퉁한 듯하고
높은 덕은 계곡과 같고
아주 깨끗한 것은 더러운 것 같으며
매우 넒은 덕은 부족한 듯하고
건실한 덕은 게으른 듯하고
정말 참된 것은 탁한 듯하다.
아주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고
아주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으며
정말 큰 음은 소리가 없고
정말 큰 형상은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도는 감춰져 있어 이름이 없지만
오직 도만이
온갖 것을 기르고 베풀기에
잘 시작하고 잘 끝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