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데 없는 사람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15 / 덕경편 41장(4/5)

by 신아연


대선 후보자들의 공방전을 보면서 저들 중에 도덕경을 읽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싶어집니다. 원래 도덕경은 지도자 지침서, 정치 수양서니까요. 애초 대상 독자가 군주, 지도층이었던 거죠. 저는 마음 수양이나 자기 돌아보기용으로 도덕경을 활용하고 있지만 노자의 관심사는 전혀 그런 데 있지 않았지요. 그러나 고전은 동서고금 두루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그 안에서 찾아 삶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지요.


하기야 도덕경을 읽을 정도의 수준이라면 현실 정치 따위엔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고 버트런트 러셀이 말했겠지요. 왠 러셀? 러셀이 언제 그런 말을 했냐구요? 미안합니다. 러셀이 그런 말 한 적 물론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했을 거라는 거죠.


오늘 진도 나갈게요.


아주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고

아주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으며

정말 큰 음은 소리가 없고

정말 큰 형상은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 시간에 큰 그릇 이야기는 했지요. 될 그릇은 이미 됐고, 지금 못 됐으면 이번 생에는 되지 못할 저 같은 보통 사람을 예로 들면서. 그런데 노자가 말하는 그릇은 그런 그릇이 아니라고 했지요. 사람됨의 그릇이란 의미라고 했지요. 대기면성, 사람이란 그릇은 결코 완성됨이 없다는.


대방무우, '아주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다'는 말도 은유로 풀어본다면 '저 사람은 모난 데가 없어.' 이런 말 할 때 있잖아요. 사람의 마음 넓이가 어디까지인지 파악이 안 될 때를 비유한거죠. 마음을 넓이라고 한다면 넓이에는 사각의 모서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감각에 잡히지 않을만큼 넓은 거지요. 예수나 붓다,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겠죠. 상덕의 사람 말입니다.


대음희성, '정말 큰 음은 소리가 없다'는 건 없다기 보다 안 들린다는 뜻일텐데, 간밤에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 설친 분 계신가요? 도로나 층간 소음 땜에 짜증나는 일은 있어도 지구 자전 소리에 귀 막는 일은 결코 없지요. 대상무형, 큰 형상은 형상이 없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너무나 큰 것은 시각적으로 안 잡히잖아요.


이런 예들을 왜 들고 있지요? 네, 도와 덕을 와닿게 설명하기 위해서죠. 정말로 덕있는 사람, 참다운 도의 실천자는 이런 모습이라서 내 곁에 이런 사람이 있어도 잘 파악이 안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거지요.


소크라테스는 서울역 앞 노숙자 중 한 사람이었고, 예수는 흙수저였고, 금수저 붓다는 일부러 수저를 버렸죠. 동시대 사람 중에 이 세 사람을 제대로 알아 본 사람이 얼마나 되었나요? 그러기에 사약을 내리고, 십자가에 못 박고, 고행을 조롱했겠지요.


어떤 사람이 상덕의 사람인지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어떤 사람이 덕이 없는 사람인지를 알아차리는 게 차라리 빠르죠.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 깔끔말끔 예의가 똑 부러지는 사람, 지나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은 일단 걸러야 할 것 같아요. 바람직해 보이지만 그다지 덕의 사람은 아닙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산다고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죠.


내일 계속하지요.

고맙습니다.


제 41장


수준 높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성실하게 실천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한다.

하수는 도를 들으면

조롱하며 비웃는다.

그렇게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예부터 이런 말이 있다.

밝은 길은 어두운 듯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물러서는 듯하며

평탄한 길은 울퉁불퉁한 듯하고

높은 덕은 계곡과 같고

아주 깨끗한 것은 더러운 것 같으며

매우 넒은 덕은 부족한 듯하고

건실한 덕은 게으른 듯하고

정말 참된 것은 탁한 듯하다.


아주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고

아주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으며

정말 큰 음은 소리가 없고

정말 큰 형상은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도는 감춰져 있어 이름이 없지만

오직 도만이

온갖 것을 기르고 베풀기에

잘 시작하고 잘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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