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센 자는 제 명에 죽지 못한다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19 / 덕경편 42장(3/3)

by 신아연


어제 잃고 나서 얻은 것과, 얻고 나서 잃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제 경우는 잃은 후 얻은 것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했지요. 그 전의 삶이 어리석었다는 뜻이죠. 거꾸로, 얻은 후 잃었다면 다소 그악스러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말에 42장의 마지막 구절을 연결해 보려고 합니다.


“억세고 강한 자는 제 명에 죽지 못한다”, 평소의 노자답지 않게 강성 발언을 하네요. 얼마나 밉상이었으면. 춘추전국시대의 피 튀기는 땅 따먹기 전쟁에서 포악한 군주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거의 예외가 없었을 테죠. 하지만 강하면 꺾이는 법이죠. 중국 최초로 통일을 이룬 진시황의 말로를 떠올려 보세요. 몰아대기만 한다고 일이 되는 게 아니죠. 해와 바람 중에 누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나요.


강함 속에 약함을 품고, 부드러움으로 각진 것을 녹여내야죠. 나설 때가 있으면 물러날 때가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지 않으면 밖을 향한 그 강함과 광포함이 스스로를 망치는 길로 이끕니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떠올립니다. 최고의 군주는 신의 따위를 헌신짝처럼 버린다고 한. 기만과 거짓을 써서라도 이기고 봐야 한다며.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니.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상이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현실이라는 거지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묘한 꾀를 내는 여우가 되었다가 직진 공격하는 사자가 되었다가 하라고도 했지요. 또한 ‘전쟁은 어차피 속임수’라는 말은 책략가 손빈의 지론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강한 자는 더 강한 자 앞에 무너진다는 거죠. 끝까지 살아남는 자는 약한 자입니다. 아니 약해 보이지만 진정한 강자, 예수나 부처, 노자, 공자 같은 분들이죠.


대선전쟁을 치르고 있는 요즘, 후보들에게는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마음뿐이겠지요. 제 각기 군주론과 손자병법을 탐독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승리한 독재자와 압제자, 무능자들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최종 투표는 우리가 한다 해도 후보를 간추리는 과정을 보는 것만도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문득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변하고, 형태를 잃고, 기억마저 빼앗기니까요. 억센 마음이 순해지고 고집이 둥글어지니까요. 혹은 거꾸로 더 뻣뻣해질 수도 있구요.


시간 속에서 내면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풋내 나는 영혼이 곰삭기도 하지만, 급기야 존재는 시간 밖으로 밀려나게 되지요. 시간은 폭군처럼 포악하게 굴지도 않는데 결국은 순응하게 만들지요. 그 안에서 우리는 허무를 느끼기도 하고 영원한 안식과 자유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노자가 말하는 반대 성향의 조화로움이 시간 속에서 발견됩니다. 시간이 갖는 거대하고 위대한 힘입니다.


제 42 장


도는 하나를 살고

하나는 둘로 이루며

둘은 삼으로 존재한다.

만물은 음을 등에 지고 양을 가슴에 품고

두 기가 서로 조화를 이룬 형태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고아 같은 사람,

짝을 잃은 사람,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왕은 오히려

이것들을 자신의 호칭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세상 이치는

덜어내려 해도 오히려 더해지는 경우가 있고

더하려 해도 오히려 덜어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을

나도 가르치는데,

억세고 강한 자는 제 명에 죽지 못한다.

나는 이런 이치를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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