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업있다

죽음이야기 18

by 신아연


어젯밤, 실로 오랜만에 모임 2차로 노래방을 갔습니다. 저는 음정, 박자를 잘 맞추는 편이기 때문에 100점을 받을 때가 많은데 어제도 부르는 노래마다 100점이 나왔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사는 절절했고, 가사의 대부분은 달콤했든 씁쓸했든 과거에 사로잡혀 있거나 과거를 부여잡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제도 불렀지만 제가 자주 '여자라는 이유로'로 바꿔 부르는 조항조의 <남자라는 이유로>에는 '당신도 이런저런 과거가 있겠지만'이란 가사가 나오죠. 그렇습니다. 과거, 누구나 그 과거에 발목 잡혀 산다는 게 문제입니다.


어제도 대화 중에 일행 한 분이 제가 과거에 행한 '악행^^'에 대해 말을 꺼냈습니다. 저는 언제부턴가 지난 이야기에 아무렇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응, 그런 일이 있었지. 지금이라면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을 텐데 그땐 내가 지나쳤구나. 내게 상처받은 당사자를 만난다면 언제든 사과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런 기회가 있든없든 내 안에서는 이미 완결된 일이야. 그때 나는 미숙했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을 이미 용서했으니까.' 이렇게 말입니다.


자책이나 수치심, 변명이나 합리화, 핑계나 회피의 구멍을 찾느라 가슴 속에 동요가 이는 경우가 거의 없이 자기용서에서 오는 자유함을 누립니다.

photo-1605600659908-0ef719419d41.jpg


쓰레기통을 비우듯 과거를 자주자주 비우고, 생각이나 감정을 담백하게 일으킨 이후 점차 마음의 찌꺼기가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의식적인 훈련을 통해 이제는 자동적으로 되어 갑니다.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 그것이 무의식이죠. 대부분의 무의식은 고통의 창고지요. 제가 지난 1년 반 동안 몸부림친 일도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과의 얽히고 설킨 '과거청산, 무의식 청소'의 지난한 몸짓이었던 거지요.


인간은 오래된 기억을 지속시키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이 오래된 감정적 고통의 축적물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이것을 '고통체'라고 부른다. 이미 가지고 있는 그 고통체에 새로운 고통을 추가하는 것은 멈출 수 있다. 가해자는 오직 하나이다. 바로 인간의 무의식이다. 무의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그 깨달음이 진정한 용서이다.


달라이 라마, 틱낫한과 함께 21세기의 위대한 영적교사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의 목소리에 끌려다닌다. 생각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고 마음은 과거에 의해 조건지어져 있기 때문에 당신은 언제까지나 되풀이해 과거를 재현할 수밖에 없다. 동양에서는 이것을 카르마(업)라고 부른다. -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07289682.jpg?type=m3&amp;udate=20210420


업의 소멸, 이것이 한 생의 과제입니다. 그 과제를 하는 동안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업을 짓습니다. 하지만 먹었으니 똥을 누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쓰레기통이 차기 전에 바로바로, 그때그때 비우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냐고요? 당연히 가능하지요! 순간순간 깨어 있으면 됩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해야 하지만 나중에는 자동적으로 됩니다. 늘 깨어있게 되는 거지요. 저는 점점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과거 업장은 녹고 새 업은 덜 지으니 무의식 창고가 점점 비워져 가는 거지요.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위해 가볍게 더 가볍게 말입니다.

%EB%B3%B4%EB%94%B0%EB%A6%AC.png?type=w773

내 안에 업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억센 자는 제 명에 죽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