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21 / 덕경편 43장(2/3)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자기 색깔, 자기 주장이 약하면 약할수록 어디서나 누구와도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에고와 아상이 없을수록(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관계맺기에서 고통을 덜 받습니다. '어따 대고 감히' '내가 낸데'란 마음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상황에 맡겨둘 수 있는 여유가 생길테니까요.
형체가 없으면 어떤 틈사이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고 노자가 말하고 있잖아요.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는 뜻도 될까요? 형상을 버리면 곧 부처를 볼 것이라고 한 것처럼. 내 생각을 놓아버릴 때 진리를 보게 될 것이라는, '범소유상 개시허망'으로 시작하는 금강경 말씀입니다. 무위가 갖는 유익도 이와 같겠지요.
형체가 없는 것이 틈이 없는 곳에도 들어간다.
나는 이런 이치를 보며
무위가 얼마나 유익함을 안다.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제 선친은 사상범으로 무기징역을 사셨습니다. 노자 말씀에 빗댄다면 형체가 아주 뚜렷한 분이셨지요. 머리가 비상하고 의지가 강한 분이셨어요. 아버지는 일생 투철한 신념을 지닌 채 사회운동에 목숨을 거셨지요. 그런 아버지를 저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았는지 아버지와 함께 살아보질 않아서 안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20년 넘게 옥살이를 하신 아버지는 넣어드린 영치금을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는, 그래서 돈이라곤 한 푼도 만져볼 수 없는 한 방의 재소자들에게 종종 나눠 주시다 그게 들켜서 한동안 면회금지조치를 당하셨다고 해요. 시국관련 무기수들은 한 달에 한 번밖에 면회가 안 되기 때문에 면회금지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벌이었던 거지요.
저는 이 이야기를 최근에 들었는데 그때부터 아버지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습니다. 훌륭한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의 그 행위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측은지심, 배고픈 동료에 대한 베품이었을 뿐 특정 이데올로기나 사상의 발현이 아니었을테니까요. 유위한 세상에서는 뜻을 펼치지 못했지만 비로소 옥중에서 무위의 유익함을 아셨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제 황당한 모함을 당했습니다. 제가 무슨 중요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다가 이런 일은 처음이지만 무위로 풀어야 한다는 것은 뚜렷합니다. 그나마 노자를 배운 덕분에. 배움을 실천할 기회가 왔다는 점에선 익사이팅하기도 하네요. 저 또한 형체를 없애고 틈을 비집어야 할까요.
'형체가 없어야 틈이 없는 곳에도 들어간다, 없음으로 인해 무엇이든 있게 한다'를 묵상하는 어제, 오늘 저는 이런 시를 발견했습니다. 같이 읽어보면서 오늘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든 것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지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아직 맛보지 않은 어떤 것을 찾으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하고
소유하지 못한 것을 소유하려면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곳으로 가야 한다.
모든 것에서 모든 것에게로 가려면
모든 것을 떠나 모든 것에게로 가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이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제 43 장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부리고
형체가 없는 것이 틈이 없는 곳에도 들어간다.
나는 이런 이치를 보며
무위가 얼마나 유익함을 안다.
말 없는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
세상에서 이를 따를 만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