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25 / 덕경편 44장(3/4)
얻음과 잃음, 어느 것이 더 해로운가?
뭘 얻고 뭘 잃는다는 건가요? 앞 구절과 연결해 본다면 명예와 재물을 얻는 것과 잃는 것, 어느 것이 더 해로운가를 묻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니면 명예와 재물을 얻었으나 목숨을 잃는다면 어느 것이 해로운가? 이렇게 풀 수도 있겠지요.
다음 구절에서, 명예와 재물에 대한 지나친 애착심은 모종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분별없는 악착심은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한다고 하니, 명예와 재물을 얻는 것과 잃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문제냐고 풀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네요.
너무 애착하면 반드시 크게 대가를 치르고
너무 많이 지니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
지나치게 돈과 명성을 추구할 때 치러야 하는 값, 즉 잃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명력과 자유, 본성을 잃게 되겠지요. 삶의 본질을 잃겠지요. 그러니 거꾸로 그걸 놓아버리면 '생긴대로' 살 수 있게 되지요. 생긴대로 사는 것, 이것처럼 생명적인 게 없어요. 돈과 명예를 주야장천 쫓아다니면 노예가 되니까요. 노예는 자기 삶의 주도권과 결정권이 없잖아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죠.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면 사람이 비굴해 지죠. 그걸 쥐고 있는 사람에게 아부하고 구걸해야 하니까요. 명예를 탐하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인해 내 삶의 주인 자리에서 좌불안석하게 됩니다. 부, 명예, 권력을 얻으려다 인격, 존엄, 자유를 잃게 됩니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굶지만 않는다면 맘 편히 사는 게 최고 아닌가요? 저는 한국 돌아와 밥벌이에 안간힘을 썼습니다. 얻을 때까지 구하고, 열릴 때까지 두드렸습니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에 구차하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일용할 양식만 생기면 거기서 딱 멈췄기 때문입니다. 더 나가지 않았기에 추해지지 않았습니다.
8,9년 전 저한테는 애인해주면 먹고 사는 건 해결해 주겠다는 '오빠들'이 있었지요. 이젠 늙어서 그런 말하는 오빠도 없지만. ㅎㅎ 여차직하면 식당 일은 언제든 할 수 있었으니 최후의 보루는 마련된 상태에서 글 쓰는 일을 찾았고 지금까지는 글 써서 먹고 삽니다. 분수를 알았기에 실족하지 않았고 제 자신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저자신아연출판책과나무발매2020.09.22.
작년에 낸 제 책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에 소개한 독자 이재홍님은 엊그제, 한 달 간의 미국 여행을 마친 후 아래와 같은 조각품을 사오셨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메멘토 모리'와,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해골상을 골랐다네요. 특히 눈을 가리고 있는 것에서 노자의 가르침을 상기했답니다.
예쁜 사람을 보면 품고 싶고,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은, 인간의 모든 욕망은 눈에서 비롯되니 불필요한 욕망을 경계하기 위해 도덕경 12장의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는 '거피취차'를 떠올리셨던 것이지요. 44장으로 빗댄다면 '저것'은 바깥의 권력과 명예이며, '이것'은 내 안의 본성과 자유입니다. 마땅히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44장 내일 마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고맙습니다.
제 44 장
명예와 목숨, 어느 것이 더 절실한가?
목숨과 재물,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얻음과 잃음, 어느 것이 더 해로운가?
너무 애착하면 반드시 크게 대가를 치르고
너무 많이 지니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