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야기 20
M선생님
어제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그제, 그그제와 다름없이 종일 책을 읽으셨나요? 이틀에 5권 씩 독파하며 가슴에 패인 상실의 웅덩이를 메워가고 있는 선생님과 함께 하기 위해 저도 요즘 온종일 책을 읽습니다.
슬픔과 아픔이 배어나는 상황마다 저는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젓갈처럼 책 속에 절여졌습니다. 책 속에 위로가 있고 공감이 있고 치유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성장이 있었습니다. 상실로 인해 우리는 더 여물어지고 온전해지니까요. 평안과 고요의 달인, 수용과 순종의 달인, 삶 자체의 9단이 되어가니까요.
영화 <사랑과 영혼>의 주인공이 되신 선생님,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은 생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 부러운 겁니다. 저는 이성과 진정한 사랑을 해 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생의 명령을 어기고도 안도가 됩니다. 제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선생님이 겪고 계시는 그 무지막지한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설마 이런 제가 부럽진 않으시겠지요. 아무리 지금이 고통스러워도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아닌 후회는 하지 않으실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진정 선생님이 부러운 겁니다.
죽음 일선에 서 있는 이어령 선생은 "죽음이란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그만 들어와 밥 먹어라'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게 죽음인 거야."라고 하시네요.
집으로, 엄마 품으로, 생명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좋다 이겁니다. 그럼 남은 아이는? 신나게 같이 놀다가 느닷없이 혼자 남겨진 아이는? 아직 엄마가 부르지 않아서 그 자리에 우두망찰 서 있는 아이는 누가 달래줍니까. 둘도 없는 단짝이던 아이가 그렇게 훌쩍 떠난 후 그 상실감을 어떻게 추스려야 하냐는 거죠.
추사 김정희가 아내를 잃은 후 유배지 제주에서 쓴 시가 생각납니다. 추사 나이 57세인 1842년 11월 13일에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건만 그 사실을 한 달 뒤에야 알고는,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제주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니 젓갈을 보내달라는 둥 반찬 투정에 음식 타박을 했다'며 대성통곡과 함께 쓴 시라고 하지요.
어찌하면
월하노인에게 저승에 상소를 하게 해서
내세엔 우리 부부 서로 바뀌어 태어나게 할까
나 죽고 그대 천 리 밖에 살아서
그대 나의 이 슬픔 알게 하리라
-나 죽고 그대 살아서
고승주 편역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중에서
책과나무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저자고승주출판책과나무발매2020.11.23.
선생님도 그렇게 하고 싶으신가요? 다음생엔 선생님이 먼저 돌아가셔서 지금 겪고 있는 이 슬픔을 그분이 알게 하고 싶으신가요? 추사 부인이 돌아가신 날과 그분이 가신 날이 마침 거의 같네요. 그러기에 추사의 시 '나 죽고 그대 살아서'가 천 마디 말보다, 천 권의 책보다 공감되실 테지요.
오늘 점심 함께 하기로 한 약속 잊지 않으셨지요? 몸도 마음도 춥고 시린 선생님, 단단히 싸매고 나오세요. 저도 그리 할게요.
곧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