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29 / 덕경편 45장(3/4)
계영배라는 게 있지요.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 특별하게 만든 잔. 술잔을 가득 채우지 못하도록 술이 어느 정도까지 차면 술잔 옆의 구멍으로 새게 되어 있다.' 이렇게 설명이 나오네요.
가득찬 것은 비어 있는 듯 하나
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
계영배를 이 구절과 연결해 보고 싶네요. 비어 있는 것이 곧 가득찬 거죠. 여기서 가득찼다함을 가장 알맞다는 뜻으로 풀이해 봅니다. 약간 비어 있는 듯한 것이 가장 적절함이며 온전함이란 뜻으로.
인간관계에 적용해 볼까요? 빈틈없이 완벽한 사람, 못 하는 게 없는 사람, 외모조차 빼어난 사람, 즉 말 그대로 '가득찬 사람'과 터놓고 사귀기는 어렵습니다. 주눅이 들고, 초라해지고, 그 앞에서 실수하면 지레 무안할 것 같잖아요. 이래서야 그 가득참이 의미가 없지요. 관계를 얼어붙게 하니까요. 쓰임도, 작용도 다하지 못하는 거죠.
똑똑한 척하다가 일을 그르치고 역사 속에서는 목숨까지 잃은 경우가 많지요. 가령 시기질투심이 강한 사람 앞에서 잘난 척을 해보세요. 날선 경계심을 가질 뿐더러 기분이 나빠져서 호시탐탐 나를 무너뜨릴 궁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래서야 그 똑똑함, 그 잘남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아둔한 사람인 거죠.
실상은 가득찼는데 비어 있는 듯한 사람, 바로 도의 사람이지요. 벌나비가 꽃에 앉듯 사람들이 편하게 다가옵니다. 그런 사람에겐 독특한 향기와 정취가 있지요. 지혜가 있지요. 진짜 멋있는 사람은 약간 비어 보이는 사람이죠. 큰 지혜가 있는 사람만이 어리석은 듯이 행동할 줄 압니다.
'지혜로워서 되레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소크라테스를 꼽겠습니다. 그의 가장 큰 지혜는 자신이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혜지요. 즉,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겁니다. 노자가 말하는 '자신을 아는 자는 명철하다'는 의미와 통합니다.
장자도 소크라테스와 같은 말을 했지요. 어제 언급했듯이 인간은 시간적으로 너무 짧게 살고, 공간적으로 한 곳에서 일생을 보내기 때문에 (근거없는 편견과 완고한 자신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빗대어) 그 안에서 얻어지는 지혜라는 게 뻔한 거라는 사실을 간파했지요. 두 철인(哲人)은 '인간은 무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지혜가 가장 큰 지혜'라고 말하고 있네요.
제게는 고기 사먹을 돈으로 시집을 사는 친구가 있습니다. 육으로 비어 있는 듯하지만 영으로 충만한 친구죠. 매일 아침 제게 시를 필사하여 보내주는데 오늘 아침, 그 가운데 한 편을 여러분들과 나누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요? 노자처럼, 장자처럼, 소크라테스처럼, 붓다처럼, 예수처럼 지혜롭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잖아요. 나를, 너를, 우리를, 너희를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지혜의 날개가 펼쳐지지 않을까요?
그대 진정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사랑에 걸어라
아니거든,
이 무리를 떠나라
반쪽 마음 가지고는
어전(御前)에 들지 못한다
신을 찾겠다고 나선 몸이
언제까지 지저분한 주막에 머물러
그렇게 노닥거리고 있을 참인가?
-모든 것을 사랑에 걸어라 / 마울라나 젤랄렛딘 루미
제 45 장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하나
그 작용에는 어그러짐이 없다.
가득찬 것은 비어 있는 듯 하나
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
아주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빼어난 솜씨는 서툰 듯하고
아주 잘 하는 말은 어눌한 듯하다.
몸을 움직여서 추위를 이기고
고요함이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니
맑고 고요함으로 천하를 바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