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경지에 이르려면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30/ 덕경편 45장(4/4)

by 신아연


새벽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서 늙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점점 깊고 굵게 잡혀가는 주름살만큼 지혜가 늘어간다면, 나이 들수록 나 자신에 순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다면, 무상한 시간의 배를 타고 유유히 흐를 수 있다면, 내 곁을 떠나가는 존재와 관계의 소멸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면... 조금은 스산하고 쓸쓸한 마음으로 노자를 이 새벽에 다시 만납니다.


아주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빼어난 솜씨는 서툰 듯하고

아주 잘 하는 말은 어눌한 듯하다.


이거야 원, 오늘 또 모순의 극치를 말하고 있네요. 41장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지요?


밝은 길은 어두운 듯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물러서는 듯 하고, 평탄한 길은 울퉁불퉁한 듯하고, 아주 깨끗한 것은 더러운 듯 하고, 아주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고, 아주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으며, 아주 큰 음은 소리가 없고, 아주 큰 형상은 모습이 없다고.


'적벽부'로 유명한 시인 소동파는 이를 패러디하여 큰 지혜는 어리석은 듯 하고, 큰 용기는 겁먹은 듯 하고, 지극한 귀인은 면류관을 쓰지 않아도 영화롭고, 지극히 어진 사람은 도인 체조를 하지 않아도 장수한다고 했다지요.


오늘 우리는 무얼 하나 집어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주 잘 하는 말, 가장 잘 하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이에 관해 전에 제가 쓴 글이 있습니다.


혼자 살게 된 후 침묵과 고독 속에서 시나브로 말을 아끼게 된 것은 마치 가진 돈이 점점 줄어들면서 꼭 필요한 것에만 쓰게 되는 검약 습관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었습니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는 별 생각 없이 돈을 쓰고 불필요한 것들을 사들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듯이 말할 상대나 가족이 있을 때는 평소의 언어 습관을 알기 어렵습니다. 돈을 펑펑 쓰듯이 말을 펑펑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돈을 함부로 쓰게 되면 낭비와 후회가 따라오듯이 수다스럽고 소란스러우면 말실수와 시간 낭비를 하게 됩니다.


물론 저도 처음에는 말고픔에 허덕였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이혼했나'하며 몸부림을 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온종일 아무 말을 안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뿐더러 며칠간 한마디를 안 해도 그랬다는 의식 자체가 없습니다(굶은 상태에서 폭식하듯이 이따금 폭언(?)하곤 하지만 ㅎㅎ). 보통은 이 지경이면 우울증이 생긴다는데 저는 말을 줄이니 오히려 공허감과 외로움이 잦아들고 내적 공간이 마련되어 내면세계가 여물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침묵 훈련이 되면서 시쳇말로 멘탈 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말 다이어트가 가져온 위대한 효과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일종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경지인 거죠. 아주 잘 하는 말은 어눌한 듯하다는 노자 말처럼 사람을 얻으려면 섣부르게 가르치려 들지 않고, 조급하게 판단이나 비난하지 않으며, 내 입장에서 충고나 조언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청해야 합니다. 말 잘 하는 사람은 결국 잘 듣는 사람인 거죠.


45장은 여기서 마치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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