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안락사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제 책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5일'이 나왔습니다.
마침 오늘이 스위스에서 조력사 하신 분의 1주기라 기일에 맞춰 출간되어 의미가 깊네요. 지난 해 2021년 8월 26일 저는 스위스 바젤에 있었네요...
그 긴장감, 그 절박함, 그 두려움, 그 안타까움이 다시금 떠올라 가슴이 먹먹합니다. 마치 납골당에 유골함을 모시듯,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에 그분의 영혼을 안치하고 저는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삶과 죽음의 여행을 아직은 계속해야 하니까요.
신간
작가 신아연
출판 책과나무
출간 2022.08.26.
스위스 조력자살을 선택한 세 번째 한국인과 동행한 저자의 체험 기록이자, 삶과 죽음을 다룬 철학 에세이. 독자라는 인연으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폐암 말기 환자의 조력사 동반 제안을 받아들인 후, 환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동안 저자 본인의 감정적 파고와 안타깝고 절박했던 현장의 상황을 올올이 써 내려가고 있다.
그렇게 죽음 배웅을 하고 돌아온 저자는 그 독특한 체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으로 침잠한다. 그 과정에서 창조주를 만나게 되고, 극한의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죽음을 택한 그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 이면의 죽음마저도 영생을 향한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다며 담담히 뒤늦은 말을 걸고 있다.
스위스행 편도티켓을 쥔, 일면식도 없던 조력자살 희망자와 동행한 저자의 기록
우리나라도 안락사나 조력사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때에 2016년과 2018년에 이어 2021년,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택한 말기 암 환자와 동행한 후, 내밀한 시선과 섬세한 필체로 담담히 써 내려간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는 우리 내면에 충격적이면서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법 제정 운운 이전에 삶과 죽음이 일상 대화 속으로 들어오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과 스위스까지 함께 가줄 수 있는가?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어느 날 한 독자로부터 스위스 조력사 동행 제안을 받는다. 본인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 책에는 죽음 여행을 떠나기 전, 죽음과 삶을 성찰하며 두 사람이 나눈 깊은 인문적 대화와, 실제로 죽어야 하는 사람과 그 죽음을 간접 체험하는 사람의 공포와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위스로 떠나기 전, 저자는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돌려보리라 마음을 다잡지만 결국 죽음의 침상에 눕고 마는 그를 보며 무기력과 혼란에 빠져든다.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당신도 조력사를 택하겠는가?
특별한 배웅을 하고 온 저자는 안락사와 조력사 논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우리 사회를 위태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 스위스에 동행했다고 해서 본인이 조력사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조력사 현장을 경험한 후 기독교인이 된 저자는 생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며 따라서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조력사는 또다른 조력사를 부를 것이라는 현실적 우려와 함께.
글을 시작하며
Part 1
2021. 7. 25(일)
스위스 안락사 동행 제안을 받았습니다
8. 10(화)
죽음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
8. 13(금)
스위스행 항공권을 받다
8. 21(토)
생애 마지막 생일
8. 22(일)
죽으러 가기 위한 코로나 검사
8. 23(월)
죽음의 대기 번호 ‘444’
8. 24 새벽(화)
네덜란드를 경유하여 스위스로
8. 24 오후(화)
드디어 그를 만나다
8. 25(수)
귀천을 하루 앞둔 날
8. 26(목)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다
Part 2
한 친구에 대해 난 생각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한 5개월
내가 만난 큰 바위 얼굴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
두 가지 문제
삶과 죽음의 맞선 자리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죽음이 주는 의미
나 죽고 그대 살아서
죽음을 쓰는 사람
막상 내 죽음이 닥쳐 봐, 그게 되나
영성의 배내옷, 영성의 수의
죽음은 옷 벗기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이 예술
나의 영끌리스트
죽음 앞의 소망
사후 세계의 확신
신이 뭐가 아쉬워서
글을 마치며
저 : 신아연 (Shin, Ayoun,申娥延)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나왔다. 21년 동안 호주에서 살다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자생한방병원에 ‘에세이 동의보감’과 ‘천생글쟁이 신아연의 둘레길 노자’를 연재하며 생명과 마음치유에 관한 소설과 칼럼을 쓰고 있다.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 인문 에세이 『내 안에 개있다』를 비롯,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공저 『다섯 손가락』 『마르지 않는 붓』 『자식으로 산다는 것』 등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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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글에 쓴, 최근에 연인을 떠나 보낸 분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떠나신 분도 책을 좋아해서 두 분은 '독서연인'이었지요. 함께 읽었던 책을 뒤적이며 고인이 밑줄 친 부분이 남은 자의 가슴에 밑줄이 되는 새삼스런 경험은 아리고 아련할테지요.
저도 그 느낌, 비슷하게 압니다. 스위스에서 조력사하신 분이 떠나기 전날 제게 주신 책에 그어져 있는 밑줄은 저를 늘 숙연케 합니다. 그분과 제가 연인사이는 아니지만... 마이클 싱어의 명상수업 『상처받지 않는 영혼』이 그 책이죠. 책을 주신 날은 25일이었지만 서명은 그 다음 날, 돌아가시기로 한 날 26일로 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 '죽음이 주는 의미'에 집중적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분은 내면을 탐구하는 이런 류의 깊은 책을 통해서 죽음 준비를 해오셨을 테지요. 그리고는 너도 나처럼 죽음 채비를 하라는 뜻으로 주셨을 테고요.
삶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 죽음이라는 사실은 실로 우주적인 역설이다. 어떤 사람이나 상황도 죽음만큼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깨우쳐 줄 수 있다고 한다면, 죽음은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앗아가 버린다. 어떤 사람이 모든 인간은 인종과 빈부를 초월하여 동등하며 차별이 없음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한다면, 죽음은 단번에 만인을 동등한 위치로 가져다 놓는다. / 256쪽
죽음이야말로 삶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하지만 이처럼 깨어있는 의식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어느 순간에도 숨이 넘어갈 수 있다. 그것은 노인들만이 아니라 갓난아이에게도, 십대에게도, 중년에게도 늘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한 호흡 사이에 그들은 저 너머로 사라진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죽음이다. / 258, 259쪽
언젠가 죽으리라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으니, 해야 할 말을 서슴없이 하고, 해야 할 일을 주저없이 하라.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에 오롯이 임하라. 이것이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사는 방식이다. 항상 죽음을 대면하고 있는 것처럼 살기를 배우라. 그러면 당신은 더 대담해지고 가슴이 더 열릴 것이다. 삶을 온전하게 살면 마지막 소원 같은 것은 품고 있지 않을 것이다. / 263쪽
밑줄을 긋다 못해 숫제 통째로 단락을 묶어 둔 곳도 있습니다. 마치 온전히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온전한 삶이 온전한 죽음을 맞이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온전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온전과 완전은 아주 다른 개념이지요. 반대말에 가깝습니다. 완전이 병이라면 온전은 병이 치유된 상태입니다. 지금 그대로 건강한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는 '온전한' 존재입니다. 보탤 것도, 덜 것도 없이. 이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열쇠는 죽음이 가지고 있고, 그것이 죽음이 주는 '온전한' 의미입니다만, 이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김보선 / The-Flower-is-Blooming2,2010,162x130.3cm,acrylic on canv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