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34/ 덕경편 47장(1/3)
겨울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도덕경 47장은 갈무리의 계절 겨울처럼 내면으로, 내면으로 돌이킬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문밖을 나가지 않고도
세상을 알며
창밖을 엿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를 본다.
비대면 시대에 적절한 내용 같네요. 바깥으로 나가지 않을수록 좋다니, 기원 전 3세기 사람이 21세기 코로나 시대를 예견했으니 노자의 혜안이 과연 대단하네요.^^
지난 시간에 having과 being의 삶을 이야기했지요. 오늘 본문처럼 문밖으로 나가고 창밖을 기웃대는 것은 having에 속합니다. 소유의 삶인 거지요.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지식이든, 사랑이든 내 바깥의 것에 의지하는 한 내 삶은 그 장단에 맞춰 출렁대기 마련입니다. 조건부가 되는 거지요. 위태롭지요. 내 인생의 주도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위험이 늘 존재하지요.
문이나 창은 그런 의미인 거지요. 본래의 나를 가로막는 거대한 인위인 거지요. 돈, 권력, 명예, 지식뿐 아니라 이념, 종교, 제도, 교육, 관습, 문화, 예절 등 정교하고 견고한 인위의 장벽 앞에 나라는 참존재, 본래의 모습은 희미해져 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눅이 들어요.
그런 것들을 추구하면 할수록, 매이면 매일수록 본성을 잃어가게 됩니다. 인위적인 것들에 매몰되어 자기가 지워집니다. 점점 더 아는 게 없어집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내 안에서 앎을 발견하는 것과 문밖, 창밖에서 앎을 추구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10% 모르면 10% 완벽해지고, 100% 모르면 100% 완벽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를수록 완벽해진다니 뭘 모르고, 뭐가 완벽해진다는 걸까요?
문밖, 창밖의 일을 10% 모르면 10% 만큼 내면 성찰이 일어나고, 100% 모르면 100% 자기 돌아보기가 가능해진다는 뜻이지요.
문밖, 창밖의 일을 아는 것이 '지식'이라면, 나를 아는 것은 '지혜'입니다. 깨달음입니다. 무위의 도를 얻음입니다. 진리에 이르는 삶, 참나의 삶, 존재적 삶, being입니다. 그러기에 멀리 가면 갈수록 아는 것은 더욱 적어지는 거지요. 이건 또 무슨 말일까요? 내일 알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47 장
문밖을 나가지 않고도
세상을 알며
창밖을 엿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를 본다.
멀리가면 갈수록
아는 것은 점점 적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다니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훤하고
하지 않고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