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성인!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36/ 덕경편 47장(3/3)

by 신아연


우리는 '성인' 소리만 들어도 기가 죽거나 아예 나 같은 중생하고는 인연없다 여기죠.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이런 말 자주 하잖아요. 맞는 말씀입니다.


성인군자란 윤리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이죠. 태어나면서부터 갈고 닦지만 잘 되어봤자 율법주의자요, 잘못되면 바리새파의 위선으로 빠집니다. 왜냐구요? 애초 설정 자체가 유위적이니까요. 콘크리트 구조물처럼 인간 친화적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므로 성인은

다니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훤하고

하지 않고도 이룬다.


문밖으로 나다니지 않고, 창밖을 기웃대지 않으며, 진리를 찾아 멀리 가지 않는 이유는 결국 내 안에 다 있기 때문이지요. 바리새파와 공자파가 밖으로 나다니는 부류라면 예수와 노자는 '내 안에 진리있다'는 쪽이죠. 전자는 유위파, 후자는 무위파죠.


무위로 하지만 못하는 게 없는 으뜸은 '자연'입니다. 그러기에 노자의 사상을 한 마디로 '무위자연'이라 하는 거죠. 무위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함이 없는 함'이지요. 안하는 듯 하면서 다 하는 거죠. 자연의 위대한 작용을 보세요.


노자의 성인은 이런 성인입니다. 해 볼 만하지 않나요? 더 어렵다구요? 그 또한 맞는 말씀입니다.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잔소리 하기가 쉽지 사랑으로 묵묵히 기다려 주기란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면 힘들지요.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요? 잔소리해서 좋아진 사람있으면 나와보라죠. 콩나물이 안 자란다고 억지로 뽑아올리면 어떻게 되나요.


한 단계 더 전개해 봅니다.


성인은 문과 창을 안 넘는 사람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경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무슨 말이냐고요?


문과 창을 에고와 참나의 경계로 본다면 바깥은 돈, 명예, 권력, 지식, 외모 따위로 자기를 뽐내보려는, 지혜조차 나 아닌 외부에서 구하려하는 having, 소유의 세계라면, 문과 창 안의 세계는 그러한 것들을 갖더라도 being, 존재적으로 활용합니다.


공부해서 남주고, 돈 벌어 기부하고, 명예와 지위를 이용해 세상을 이롭게 합니다. 같은 말도 권위있는 사람, 유명한 사람, 예쁜 사람, 잘 생긴 사람이 하면 더 잘 먹히잖아요. 함께 성장하는 기회와 도구로 삼기에는 남다른 뭔가를 가진 것이 '당근' 유리합니다.


그러기에 경계 설정은 의미가 없지요. 운동하면 지방이 근육되듯이, 수련하면 에고 따로, 참나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어요. 개 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고, 유위로 얻더라도 무위로 나누면 그것이 곧 경계를 지우는 방법이죠.


에고를 참나로, 지식을 지혜로 전환하기 위해 저는 부단히 공부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잘난 척 하거나, 이것도 모르냐며 무안 준 적 없습니다. 지적 허영으로 삼은 적도 없구요(뭐 그럴 정도로 아는 것도 없지만^^). 다만 내가 나됨의 길이 여기에 있고, 타인과 나눌 수 있는 통로가 나로서는 이 길밖에 없다는, 거창하게 말해 소명과 천명을 다하기 위해서 입니다.


나좋자고 한 일이 남도 좋은 거, 나를 위하는 일과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이 겹치는 사람, 성인은 그런 사람이 아닐까요?


47장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제 47 장


문밖을 나가지 않고도

세상을 알며

창밖을 엿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를 본다.


멀리가면 갈수록

아는 것은 점점 적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다니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훤하고

하지 않고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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