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38/ 덕경편 48장(2/3)
어제부터 시작된 편두통이 지금까지 사라지질 않네요. 머리 환기도 않고 책을 너무 봐서 그런가 봐요. 우측 머리를 대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네요.
건강하다는 것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는 걸 절감합니다. 머리가 아프고 나서야 머리의 존재를, 속이 불편해야 몸에 위장이 있다는 것을, 맞지 않는 신으로 발이 옥죌 때 내게 발이 있었지하고 의식하게 되듯이요.
꼭 맞는 허리 띠는 허리 띠를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의 허리 띠라고 장자가 그랬지요. 무위의 허리띠라고 할까요. 몸 또한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할 때가 가장 잘 돌아가는 때겠지요. 무위의 작용이 최고의 작용인 거죠.
정신작용도 그와 같을 테지요.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들 하지요. 돈이 많아서, 지위가 높아서, 학벌이 좋아서, 학위가 여러 개라서, 인기 있어서, 인물이 잘 나서, 착해서, 남을 잘 도와서 등등 뭐 하나라도 남보다 잘난 구석이 있다고 믿는 거지요. 그걸로 남을 업신여기고 우월감을 느끼면서 사람에 따라서는 드러내 놓고 갑질을 하지요. 사는 맛을 그런 데서 찾지요.
잘난 사람일수록, 옳은 사람일수록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이나 잣대가 엄격합니다. 자기 본위의 폭력을 휘두릅니다. 특히 머리에 지식적인 것이 꽉 차 있으면 아상(我相)이 부풀어 올라 점점 교만해집니다. 위선과 허위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기에 노자는 배움을 줄이고 줄이라고 당부하는 거지요.
줄어들고 줄어들어
무위에 이르는구나
아무것도 배우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념, 가치관, 제도, 종교, 문화 등 좋고 나쁨,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등에 대한 인위적 기준과 판단을 강화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라는 뜻입니다. 도대체 그 근거가 어디에 있냐면서. 자연에 그런 게 있냐면서.
지식의 출발은 이분법입니다. 너와 나를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것이 옳으면 저것이 틀리게 되는 것에 이르는. 늘어나는 것은 편견과 비교, 경쟁과 좌절, 시기와 분쟁이지요.
지나친 자의식이 정신의 병을 낳습니다. 몸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신체적으로 건강한 상태인 것처럼 '내가 나'라는 의식이 적을수록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은 자존심이 강합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은 사람은 자신과 타인에게 들이댈 유위적, 인위적 잣대가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정신의 무위에 이른다는 것은 그런 잣대를 없애가는 일입니다. 부처님의 고행도 아상 없애기부터 시작되잖아요. 걸식은 아무나 하나요? 그것도 벌거벗은 채.
편두통 때문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 뵙지요.
제 48 장
배움을 행하면 날로 늘어가고
도를 행하면 날로 줄어진다.
줄어들고 줄어들어
무위에 이르는구나.
무위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천하를 얻으려면
억지로 일을 꾸미지 않아야 한다.
억지로 일을 꾸미면
천하를 얻기에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