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39 / 덕경편 48장(3/3)
무위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천하를 얻으려면
억지로 일을 꾸미지 않아야 한다
억지로 일을 꾸미면
천하를 얻기에는 부족하다
무위는 언어밖의 일입니다. 현상세계 배후에 존재하는 원리라는 의미입니다. 수학이나 논리학의 공리나 전제 자체를 왈가왈부할 수는 없잖아요. 그냥 주어져 있는 거잖아요. 왜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리고는 그 원리로 이런저런 수학이나 논리 문제를 풀게 되는 거잖아요.
제가 최근 1년 반 가량, 딴에는 죽을 것 같이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보다 더 부대낀 일은 없었습니다(이번 일에 비하면 이혼 그 까짓거는 시쳇말로 애들 장난이었지요. 이혼은 열 두 번 더 해도 괜찮아요). 전에 없던 몸의 병까지 얻어가며 끌탕을 하다하다 어느 시점에 가선 '탁' 놓아버리게 되더라구요. 저도 모르게 그 일 자체에서 빗겨서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고요한 평정심이 오더라구요. 무아의 경지라고 할까, 이미 내가 없는데 속 끓일 일도 사라질 밖에요.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기적처럼 문제가 풀렸습니다!
내가 없는 경지, 에고가 사라진 자리, 내가 옳네 네가 그르네 이분법의 경계가 지워질 때 문제는 봉합되고 통합됩니다. 무위적으로 해결된다는 뜻입니다. '무위로 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고, 무위로 할 때만이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얻게 된다'는 것이 이런 뜻인 거지요.
무위는 세상 밖에 존재합니다. 언어로 포착될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 수학 공리 자체를 증명할 수 없는 것처럼. 자연현상의 배후를 인식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럼에도 그것으로 인해 문제가 풀어지고 세상이 돌아갑니다.
관계의 원리도 같습니다. 최상의 관계는 언어를 초월합니다. 관계의 최상 언어 '사랑'을 말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라고 하는 순간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도를 말하는 순간 그 도는 이미 도가 아닌 것처럼. 기껏해야 비유로 말할 수 있을 뿐. 그러니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안다, 도를 안다며 감히 설쳐서는 안됩니다.
무위를 달리 표현하면 기독교의 하나님입니다. 도가의 도입니다. 불교의 불성입니다. 의식의 로고스입니다. 존재적 참나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언어 밖에 존재합니다. 언어의 세계, 이분법의 세계, 현상 세계에 매여있는 한 접속할 수 없습니다. 이미 주어져 있으나 마치 라디오의 주파수처럼 섬세하고 예민하게 맞춰야만 접속이 가능합니다. 감성이나 지성으로는 잡히지 않는, 영성으로 맞춰지는 주파수입니다.
다음주에 49장으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48 장
배움을 행하면 날로 늘어가고
도를 행하면 날로 줄어진다.
줄어들고 줄어들어
무위에 이르는구나.
무위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천하를 얻으려면
억지로 일을 꾸미지 않아야 한다.
억지로 일을 꾸미면
천하를 얻기에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