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함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41 / 덕경편 49장(2/4)

by 신아연


저는 어제 좀 놀랄 일이 있었습니다. 호주의 제 둘째 아들이 코로나 2차 백신을 맞고 호흡곤란증상이 나타나 응급실 처치를 받았습니다. 젊은층일수록 부작용이 크다고 들었던 터라 덜컥 겁이 났습니다. 다행히 정상 호흡이 돌아왔지만 남의 일인 줄 알았던 게 내 일이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오늘 도덕경도 내 일, 네 일이 따로 없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착한 사람을 착하게 대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도 착하게 대하니

그래서 덕이 이루어진다


진실한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고

진실하지 않은 사람도 진실하게 대하니

그래서 신의가 이루어진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오."(마 5 : 45,46)


성인들의 마음은 같은가 봐요. 착한 사람, 안 착한 사람, 진실한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을 함께 보듬을 수 있어야 그게 진짜 선이고, 그게 진짜 믿음이라는 거지요.


바보는 속지만 성인은 속아주는 거지요. 왜? 믿기 위해서죠. 기다려주기 위해서죠. 부모들은 자녀들이 더러 거짓말을 해도 그냥 넘어가 주잖아요. 왜죠? 그래야 언젠가는 거짓말을 안 하게 되니까요. 착하게 굴지 않아도 봐 줄 수 있어야죠. 왜죠? 그래야 언젠가는 착해지니까요.


성경에도 있잖아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노자 말씀으로 바꿔보면 도의 온전함 같이 우리 또한 온전함을 이루려면 선인, 악인, 신의, 불신의를 다 품어야 한다는 거죠.


'온전함', 참 따스한 말이죠? 온전함은 내 안에 이미 있습니다. 내 마음이 찌그러지고 긁혀 흠이 났어도 치유되어 회복하면 온전해집니다. 착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사람이 다른 누가 아닌 나일 수 있지요. 설혹 다른 사람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 속에서 나를 본다면(성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한다고 했으니까) 결국 그의 악함이 나의 악함인 거죠.


오직 사랑만이 이분법을 초월합니다. 쪼개고 나누는 것은 인간의 일이고, 나눠진 것을 봉합하고 통합하는 것은 성인의 일입니다. 우리가 성인되자고, 하나님 닮아가자고 이 공부를 하는 거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내 안에 너있고, 너 안에 나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내가 나라고 부여잡고 있는 것이 실재의 나가 아닐 수 있습니다. 아닐 수 있는 게 아니라 아닙니다. 생각과 감정이 나의 실체가 아니라는 거지요. 요즘 하고 있는 '신사와 아가씨'처럼 황당한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인, 기억상실증에 걸려 내가 누구냐고 헤매는 사람도 잃은 것은 기억이지 자기 자신은 아니죠. 잃은 기억을 찾아 헤매는 '나'는 여전히 존재하니까요. '본래의 존재, 참나'는 기억이나 경험 다발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래서 틀렸습니다. 생각 이전에, 기억 이전에 존재가 먼저입니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로 고쳐 말해야 합니다. 그 존재는 온전한 존재입니다. 착하지 않고 거짓말할 때도 있지만 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존재입니다.


내일 계속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49 장


성인은 고정된 마음이 없기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는다


착한 사람을 착하게 대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도 착하게 대하니

그래서 덕이 이루어진다


진실한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고

진실하지 않은 사람도 진실하게 대하니

그래서 신의가 이루어진다


성인은 사람들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마음과 하나가 된다


사람들은 눈과 귀를 세워 분별심을 일으키지만

성인은 모든 이들을 어린아이 상태로 되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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