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나?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44 / 덕경편 50장(1/4)

by 신아연

올 한 해도 우리는 살아남았네요.


지나간 1년 치 달력을 후르륵 넘겨보면서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1년 동안 쓴 글이 책 3, 4권 분량으로 글금고에 두둑하니까요. 또한 작년에 이어 올해, 전에 없던 고통을 겪으며 심봉사 눈 뜨듯 영안이 열리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생에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거지요. 현실적 고난이 클수록 영성적 축복이 큰 법이니까요. 저는 비로소 구원받은 느낌이 듭니다.


영의 세계에 접속한다는 의미는 성경말씀처럼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일입니다. 영성가들의 용어로는 '현재에 깨어있기, 지금 여기를 살기'지요. 플러스, 다른 사람을 나처럼 사랑하는, 노자적으로 말하자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그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영성이란 그것이 전부입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영성에 눈을 뜨면 마음이 허하고, 가슴이 시리고, 구르는 낙엽에 괜시리 쓸쓸해져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사랑고파병'이 치유됩니다. '안타깝게도' 제 경우라면 감성으로 끄적이는 연애 소설 따위는 이제 아예 못 쓰겠지요. 멍뚫린 가슴이 메워졌으니까요. ㅎㅎ


오늘 도덕경 50장은 도 안에서, 영성 안에서 살고 죽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적으로 사는 사람은, 다른 말로 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같은 말이 있지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우리에게는 이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지요. 당연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을 말로 했기 때문이니 우리 잘못은 아닙니다. 도덕경이나 성경 등 '경'의 진리는 원천적으로 언어화할 수 없습니다.


'도가도 비상도'라고 했잖아요. 도를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건 도가 아니라고. 성경에도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만나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러기에 육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영의 눈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거지요. 도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흘러드는 통로가 따로 있는 거지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지만 만약에 술이 나오는 술꼭지라는 게 있다면 따로 설치해야 한다는 말이죠. 세속살이, 세상 사는 머리로는 파악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일단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제 50 장


일껏 태어나서 죽는 길을 가는 구나

살았다고 할 사람이 열에 셋이고

죽었다고 할 사람도 열에 셋이며

딴에는 산다고 사는 데

결국 죽음으로 가는 사람 또한 열에 셋이구나.


왜 이런가?

지나치게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듣자하니 삶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험한 길을 가면서도

코뿔소나 호랑이를 피하지 않고

군대에 가도 갑옷으로 무장하지 않는다


코뿔소는 그 뿔을 받을 곳이 없고

호랑이는 발톱으로 할퀼 곳이 없고

적군은 무기를 겨룰 곳이 없다.


왜 그런가?

그 사람은

죽음에 이르는 여지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어떤가요? 바로 '척' 다가오면 영성이 높은 거지요. 그런데 이걸 말로 풀어버리면 김빠진 맥주 꼴이 되지요. 여지껏 마셔온 김빠진 맥주, 이번에도 못 마실 이유가 없다고요? ^^


우선 열 사람 중 아홉은 이런저런 연유로 살아도 산 게 아니고 단 한 명만이 제대로 살고 있다는 뜻인데요,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속할까요? 내일 알아보기로 하지요.


오늘은 여기까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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