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을 너무 좋아하면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45 / 덕경편 50장(2/4)

by 신아연


지난 해는 유난히 부음을 자주 접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8월에는 스위스 안락사라는 뜻밖의 죽음 여행을 배웅했고 지인들, 지인들의 지인 부고도 여럿 들었습니다. 지난 해 11월에 연인을 잃은 한 독자의 애별리고(愛別離苦)에는 그 어떤 위로도 가닿지 않아 저로서는 그 옆에 있어주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분의 세상이 일순간에 무채색으로 변했고 전 존재가 잿빛 슬픔에 갇혔습니다.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건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 것에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는 법이거늘, 오늘 노자는 생기발랄하게 자기 분수에 맞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산 사람이나, 불평불만에 젖어 남 탓, 세상 탓으로 일생을 낭비하는 사람이나, 늘 잔머리를 굴리며 내보는 꾀가 오히려 죽음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는 사람이나 결국 모두 삶에만 관심을 두었지 죽음은 없는 듯이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열 명 중 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성실 근면 활기 호기심의 삶을 추구하고(세상 사람들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태도로 여기죠. 일평생 이렇게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우린 살아봐서 알지요), 또다른 세 사람은 그 반대편에 있는 어둠의 자식들이죠. 시쳇말로 '너 같은 거 낳고도 네 어미가 미역국을 먹었겠지'하고 조롱당하는 부류가 여기에 속하겠지요. 노자는 전자를 '살았다고 할 사람들'로, 후자를 '죽었다고 할 사람들'로 나눠 부르네요.


그럼 나머지 세 사람, 즉 산다고 하는 짓이 오히려 죽음을 부르는 부류는 어떤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일껏 태어나서 죽는 길을 가는 구나

살았다고 할 사람이 열에 셋이고

죽었다고 할 사람도 열에 셋이며

딴에는 산다고 사는 데

결국 죽음으로 가는 사람 또한 열에 셋이구나.


한 마디로 탐욕의 노예로 살아가는 부류를 말하겠지요. 가령 자나깨나 입만 열면 건강타령에, 몸에 좋다고 하면 뭐든 먹은 탓에 원인 모를 부작용으로 되레 생명을 잃는 경우, 지위나 명예, 부에 집착하다 개망신을 당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급기야 자신도 추락하여 목숨과 맞바꾸는 사람들,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텔레비전을 켜기만 하면 만날 수 있지요. 악마와 계약을 맺은 결과죠.


이게 다 왜 그런다고요?


왜 이런가?

지나치게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네, 사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그렇다네요.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오직 사는 것에만 매달리다 보니 열에 셋은 개미처럼 열심히, 다른 셋은 지레 좌절하여 자포자기로, 또 다른 셋은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게 된다는 거지요. 9할을 뺀 나머지 1할은 그럼 어떻게 사는 사람일까요? 내일 살펴보도록 하지요.


고맙습니다.


제 50 장


일껏 태어나서 죽는 길을 가는 구나

살았다고 할 사람이 열에 셋이고

죽었다고 할 사람도 열에 셋이며

딴에는 산다고 사는 데

결국 죽음으로 가는 사람 또한 열에 셋이구나.


왜 이런가?

지나치게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듣자하니 삶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험한 길을 가면서도

코뿔소나 호랑이를 피하지 않고

군대에 가도 갑옷으로 무장하지 않는다


코뿔소는 그 뿔을 받을 곳이 없고

호랑이는 발톱으로 할퀼 곳이 없고

적군은 무기를 겨룰 곳이 없다.


왜 그런가?

그 사람은

죽음에 이르는 여지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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