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다시 한 번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48 / 덕경편 51장(1/3)

by 신아연


지난 해 말, 송년회라는 이름으로 세 사람이 조촐히 모였습니다. 새해 캘린더와 다이어리를 선물 받고, 각자 새해 소망을 나눴습니다. 저는 영적으로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기를 다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예수 따라 살기'지요. 누군가를 따라하려면 그가 뭘 했는가를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Christ를 좋아하지만 기독교인들Christians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간디처럼 저도 예수는 좋아하지만 기독교인은 불편하고 거북합니다(독자 중에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들이 여럿 계시는데..., 송구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안 갑니다.


기독교인이 되고 싶진 않지만 예수처럼 살고는 싶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예수는 도와 덕을 완전히 실현한 이니까요. 영적 삶의 모본이니까요. 제가 도덕경을 공부하다보니 예수야말로 '도와 덕의 화신'이라는 걸 알게 된거죠.


오늘 펼치는 도덕경 51장은 영성의 깊이를 보여주는 장입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제 51 장


도는 모든 것을 낳고

덕은 모든 것을 기르고

물질은 모든 것의 형체를 만들고

기운으로 모든 것을 이룬다.


그러기에 모든 만물은

도와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도는 높고

덕은 귀하지만

만물 위에 군림하지 않고

그냥 저절로 되어가게 둔다.


낳고

기르고

실하게 하고

성숙시키고

안정되게 하고

돌보고

먹여주고

감싸고

회복시키고

다독이고

덮어준다.


낳고도 소유하지 않고

이루고도 기대지 않고

키우고도 지배하지 않는다.


이것을 그윽한 덕(현덕;玄德)이라 한다.



51장을 이해하는 데는 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덕을 성령으로 풀면 쉽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이 있게 했고, 성령으로 그것들을 운용하지요. 성령은 또 뭐냐고요? 하나님이 흙으로 형체를 빚은 후 코에 불어 넣은 기운을 말합니다. 우리를 지금 이렇게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의미합니다.


에너지야 음식물을 통해 얻는 거 아니냐고요? 맞죠. 몸의 에너지야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일로 낙담해서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을 때 배가 고파서, 밥을 굶어서 그런 거 아니잖아요.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밥을 못 먹죠. 그런 와중에도, 죽음만이 유일한 대안일 것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우리를 추스르고 다시 일어나게 하는 에너지, 그게 바로 성령입니다. 영의 에너지, 영의 기운인 거죠. 다른 말로 덕입니다.


우리 안에, 우리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 안에, 비록 구더기라할지라도 거기에는 도와 덕의 작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은 도와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 거죠.


만물 안에는 저마다 도와 덕이라는 신성이 존재합니다. 지금 내가 미워죽겠는 사람 안에서 도와 덕의 작용, 하나님의 형상을 본다면 그와 내가 실상은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요. 우리는 도와 덕으로 만들어지고 움직여지는 동일한 존재라는 깨달음, 그것이 영성입니다. 새해에 저는 그 영성을 키워가고자 합니다.


그 신성, 도와 덕이 구체적으로 우리 안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내일 살펴보겠습니다. 결론은 '사랑'입니다. 도와 덕은 다른 말로 사랑입니다. 도덕경 51장을 통해 그 사랑에 흠뻑 젖어보도록 하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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